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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Aug 16. 2023

나의 영웅 때밀이 아줌마(세신사)의 유쾌한 한방

추억 한 스푼 드실래요?

우연히 방문한 음식점에서 목욕탕 신발장을 만났다. 딱 옛날 목욕탕 신발장이다. 추억의 신발장을 보니 어린 시절 나를 구해준 구원투수 때밀이 아줌마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대중목욕탕에 몸을 푹 담그고 온탕 냉탕을 오가면서 노는 걸 좋아한다. 앗 뜨거워를 외칠 만큼 뜨거운 온도의 물에 으으으으 소리를 내면서 들어갔다가 발그레해진 몸을 아아아 아아아 소리를 내며 차가운 물속으로 옮기면 손끝, 발끝이 짜릿짜릿하면서 옴 몸의 세포들이 다시 새로운 세포들로 교체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다.


사우나와 찜질방은 더 좋다. 특히, 진짜 숯을 굽는 숯가마에서의 찜질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좋다. 나무를 숯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마를 만들어서 며칠 동안 불을 때어 숯을 만들고 나면 열기가 다 식을 때까지 그 가마는 사용하지 못한다. 그 열기가 식어가는 가마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다. 원적외선이 듬뿍 나오고 일반 목욕탕이나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몸이 개운해진다. 서울에서는 그런 숯가마를 경험할 수가 없어서 아쉽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대중목욕탕(사우나, 찜질방 포함)과 강제 이별을 했고 한번 이별한 이후로는 좀처럼 다시 만나지지가 않는다. 집 욕조에 물 받아서 하는 목욕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대중목욕탕은 추억 속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문을 여는 순간 온몸을 감싸는 묵직한 수증기와 비누향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부터 대중목욕탕의 추억 속으로 풍덩!!!


음식점 신발장으로 쓰이고 있는 목욕탕 신발장

목욕은 새벽 첫 물에 해야 하는 게 엄마의 원칙이었다.

일어나라~~ 목욕 가자~~ 

매주 일요일 새벽 6시 욕탕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입장을 해야 한다. 그 시절 목욕탕은 왜 그리 일찍 문을 열었는지 모르겠다. 4살 즈음부터 매주 새벽 목욕을 했다고 한다. 아무도 몸을 담그지 않은 깨끗한 첫 물에서 깨끗하게 씻어야 진짜 목욕이라고 주장하시던 엄마의 손을 잡고 매주 일요일 교회 가듯이 목욕탕을 갔다. 잠도 덜 깨서 눈곱도 안 떼고 가끔은 잠옷을 입은 위에 외투만 걸치고 휘청휘청 따라갔다.


오늘은 비누놀이를 할 수 있게 해 주기를 때를 살살 밀어주기를 목욕이 끝나고 나면 바나나우유를 사 주기를 기대하면서 졸린 눈을 겨우 비비면서 따라갔다. 가끔은 목욕을 하면서 졸기도 했던 것 같다.


목욕탕에서 나는 나름 인지도가 있었다. 새벽목욕을 따라오는 아이가 거의 없었던 터라 엄마를 따라 매주 목욕을 오는 꼬맹이가 눈에 뜨였던 것이다. 원래 동네 목욕탕이 동네 아주머니들의 사랑방이고, 사교의 중심이고, 동네 대소사가 논의되는 장소였으며, 목욕탕 때밀이 아줌마가 동네 스피커로써 온 동네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다 알고 있는 곳이었으니 나의 존재는 이미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는 아주 참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조금 자라서는 엄마의 등을 야무지게 밀어주고 가끔은 동네 할머니 등도 밀어주는 바람에 때밀이 아줌마가 보조로 데리고 써야겠다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졸리지만 나름 보람 있는 목욕탕 생활을 이어가던 중 나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항상 엄마와 함께였는데 엄마가 장사를 시작하시면서 새벽에 물건을 떼러 가야 한다고 혼자서 목욕을 가라고 했다. 나는 뭐 나름 나의 구역이기 때문에 아주 당당하게 목욕탕을 향해 출발했다. 처음으로 혼자 목욕을 가는 날이다. 혼자 목욕바구니를 들고 가니 어른이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혼자 왔는가 봐? 엄마는 안 왔나? 잠도 덜 깨서 목욕탕 온다고 수고했다~~ 깨끗하게 씻고 가그라~~


목욕탕 주인 아줌마는 다정하게 웃으면서 익숙한 듯 열쇠를 내어준다. 끼익 소리가 나는 낡은 스테인리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신발은 신발장에 넣고 열쇠를 뽑는다. 그리고 목욕탕 아줌마가 내어준 옷장 열쇠번호를 보고 옷장을 찾아서 옷장을 연다. 옷을 다 벗어서 옷장 속에 넣고 신발장 열쇠도 옷장 속에 넣은 후 옷장을 잠근다. 옷장 열쇠는 발목에 끼운다. 열쇠를 목욕가방에 넣으면 혹시 도둑맞을지도 모르니까 항상 몸에 지니라고 했다.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엄마가 하는 것을 유심히 봐 두었다. 아주 늘 혼자 왔던 것처럼 잘하고 있었다.


목욕의자와 큰 대야 1개, 작은 물바가지 1개를 챙겨서 늘 앉던 자리에 놓고 비누거품을 내서 의자와 대야닦는다. 목욕장비를 다 닦은 후에  구석구석 비누칠을 해서 거품을 낸 다음 깨끗하게 씻는다. 아이보리 비누를 썼었는데 향이 너무 좋았다. 아이보리 비누를 손으로 잘 쥐고 두 손으로 뱅글뱅글 돌리면서 살살 문지르면 비누에 묻은 물이 하얀색으로 변하면서 비누거품이 만들어진다. 비누거품이 생긴 후에 비누를 내려놓고 또 살살 문지르면 거품이 쫀득쫀득해지면서 뽀얀 비누거품이 된다. 그걸 얼굴에 올려두고 거품이 없어지지 않고 얼굴 전체에 덮일 수 있게 골고루 펴 준다. 코 끝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비누냄새가 좋다.


비누놀이가 끝나면 머리를 감는다. 그때는 샤워기가 없었다. 수도꼭지만 2개가 달려있고 파란 고무가 끼워져 있는 건 찬물, 빨간고 무가 끼워져 있는 건 뜨거운 물이 나오는데 대야에 적당한 온도로 섞이게 틀어놓고 대야에 받아진 물을 바가지로 퍼내서 몸이며 머리에 물을 끼얹어야 한다. 적당한 온도로 찬물과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머리에도 비누칠을 한 다음 눈을 질끈 감고 바가지로 물을 쏴아 하고 들이 붇는다.


혼자서 너무 기분 좋게 목욕을 즐기는 그때, 갑자기 내 바가지는 누군가의 손에 낚아채어지고 귀에 들려오는 날카로운 한마디


'야! 물을 살살 써야지, 몸에 물 튀었잖아! 너희 엄마 어딨니? 아를 교육을 어째 시켜서 이라노?'


아직 머리에 비누를 다 씻어내지도 못했는데 바가지를 뺏겨버렸다. 괜히 내 바가지를 뺏어 들고는 화를 버럭버럭내고 있었다. 나는 비눗물이 내려와 따가운 눈을 겨우 뜨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봐라. 안드끼나? 어른이 묻는데 대답을 와 안 하니? 엄마 어딨 냐고?'

'혼자 왔는데요.'(나는 모기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이래 어린 아를 혼자 목욕 보내고 그 아주머니도 정신이 나갔는가베. 야! 니! 물 조심해서 써라. 알겠나?' 


영문도 모르고 비눗물 가득한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야단을 맡고 있으려니 너무 황당하고 서러웠다. 엄마한테 배운대로 잘 하고 있었는데 왜 그러지?그 때, 등 뒤에서때밀이 아줌마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와! 뭐가 문젠데. 보소! 목욕탕에서 몸에 물 튀는거 당연한거지. 아 한테 와 큰소리고? 여 좁아가꼬 물팅기는기 당연한건데 와 아침 댓바람부터 아를 잡고 야단이고? 어이?몸에 물 티는거 싫으면 목욕탕에 와 왔노?' 


'아지 무슨 상관인데? 영문도 모르면서 와 끼어드는데?와 소리 지르는데?'

'소리는 누가 먼저 질렀는데?시끄럽다. 마. 상관있지. 어린 아 한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 가마보고 있으까? 시끄럽다. 고마, 자꾸 시끄럽게하면 쫒기날줄 알아라. 알긋나?'

하면서 아줌마 발 앞에다가 찬물을 찌끄린다.

'와이라는데?하이고, 참 별꼴이네.내 이 목욕탕 다시는 안온다. 뭐, 목욕탕이 여 밖에 없는줄 아나?'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나서 평화가 찾아왔다.

'괘안나? 됐다 마. 어서 헹구고 나온나. 희안한 여자다 그자? 신경쓰지 마라. 알긋제?'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이 터져서는 엉엉 울고 말았다. 아줌마는 나를 데리고 나가서 냉장고에서 바나나우유를 꺼내 빨대를 탁 꽂아서 건네주었다.


그로부터 한동안 혼자서 목욕탕 가기가 무서웠다. 또 어떤 아줌마한테 혹시라도 야단을 맞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 순간 나를 감싸주고 위로해 준 때밀이 아줌마가 있었기에 그 두려운 마음을 누르고 용기내어 혼자서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도 목욕탕에 가면 인상이 무서워 보이거나 너무 깔끔하게 생긴 사람 옆에는 앉지 않았다. 혹시라도 또 물 튄다고 싸움나면 이번에는 나를 구해 줄 아줌마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혹시라도 영문모르고 야단 맞는 아이가 있으면 내가 구해주어야 할 나이가 되었지만 요즘은 내 일이 아니면 모른척 하는게 미덕인 시대가 되어서 어찌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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