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엄마랑 손잡고 지구 반대편으로

최가네 모녀 남미 정복기

by 봄봄나
2017.1.31.화


정말이지 오늘이 오게 될 줄 몰랐다.
영국 여행에서 돌아온 지 2주 만에
스페인어라곤 하나도 모른 채로
머나먼 미지의 땅 남미를 가게 되다니..!
그것도 엄마랑!



사건의 발단
때는 2016년 질리도록 더웠던 8월의 어느 날.
술 한잔 걸치신 아빠는 그날따라 뭐든 다 들어주실 듯 기분이 좋으셨다. 추석에 어딘가 떠나볼까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엄마의 평생소원이 우유니 사막 한번 가보는 것이라는데까지 이르렀다. 언젠가 TV에서 보신 모양이었다.
자그맣게 흩날려온 불씨를 얼른 잡아 한껏 바람을 불었다. 곧이어 내 손아귀엔 비행기 표를 끊으라는 아빠의 카드가 쥐어졌다. 그렇게 운 좋게도 나는, 엄마 소원풀이의 동행자로 발탁되게 되었다.

이때만 해도 진짜 갈 줄 몰랐지 허허



대책 없는 준비과정
막상 기회가 주어졌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정신없는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고 종강하자마자 다음날 떠나기로 되어 있는 영국 여행에 더욱 마음이 가있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이미 동네방네 남미에 가게 될 거라고 소문을 내고 있었고, 부러운 눈길들 속에 한 껏 들뜬 상태셨다. 정말이지 내가 결단을 내리지 않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여행 준비를 생각하니 까마득하고 귀찮았다. 엄마와 간다는 건 즉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모든 걸 다 책임지고 준비해야한다는 말이기 때문. 하지만 설렘으로 가득한 엄마를 보며 이렇게 둘이 긴 시간 여행할 날이 또 언제 있을까 싶었다.

12월, 비행기를 끊었다.
일단 비행기 표를 끊으면 어떻게든 가게 될 거란 생각이었다. 출국일은 1월 31일.
유나이티드 항공 리마 in 산티아고 out으로 단 95만 원에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을 몸소 체험했다....

비행기 표만 끊었을 뿐 내가 영국에서 돌아온 1월 16일까지 아무런 준비도 진행되지 않았다. 귀국한 뒤 또다시 출국을 2주 앞두고 발 등에 불이 떨어졌다.
볼리비아 비자 발급부터 여행 루트와 숙소, 투어, 교통, 음식까지 모든 것이 낯선 나라로 떠나기 위해선 어느 하나도 어긋나서는 안되었다. 유일하게 비자 발급이 필요한 볼리비아는 그 과정이 무척이나 귀찮았지만 우유니를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찾아보니 볼리비아 주변국에서도 받을 수 있고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쉽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를 노릇이니 말 통하는 한국에서 해결 짓고 가는 편이 낫다고 보았다. 숙소와 교통도 마찬가지였다.

어찌어찌 받는데 성공한 볼리비아 비자


어느 블로그에서 남미 여행하며 숙소 미리 예약하고 가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것이 없다는 글을 보았는데, 나는 한국에서 다 하고 간 덕을 많이 보았다.
물론 현지에서 흥정을 통해 얼마 정도 더 싸게 방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거운 짐을 들고 어쩌면 한밤중에 빈 방을 찾아 헤매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한국 분들을 많이 보았고 모두 우리를 부러워했다.

2주 동안 한국 시차 적응을 포기하고 뜬 눈으로 계획표를 세웠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특히 우유니에서 이과수 구간의 교통 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직항의 비행기를 타기엔 값이 터무니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가게 된 길은 남미 여행 통틀어 가장 힘들었다...


나름 짧은 시간에 진짜 자세하게 세웠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언제나 변수는 도사리기 마련!


계획 세우기는 출국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최대한 세밀하고 치밀하게 계획표를 만들고 최종 출력을 하여 항상 지니고 다녔다. 모든 숙박 바우처와 e-ticket, 여권 사본 등 출력뿐 아니라 휴대폰에도, 메일로도 보내놓았다.


인고의 46페이지



짐은 캐리어 없이 배낭과 스포츠 백으로 여행가방을 최소화했다. 평소 패션을 좋아하지만 남미 여행에서 옷이란 사치였다. 그저 흰색 검은색 긴팔 두 개와 반팔 한 개, 경량 패딩과 후리스, 레깅스 하나, 바지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서 좀 사진 찍을 맛은 안 났지만... 더 가져갔다간 버리고 왔을지도 모른다. 저 정도도 들고 이동하자니 무거워서 확 그냥 버려버리고 싶었으니까..^_^



그리하여 출발
아빠와 동생과는 한 달간 안녕하고 두려움을 한껏! 안은 채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검색대까지 줄이 짧아 금세 출국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으로 공항 식당에서 베트남 음식을 먹고 게이트 앞으로 향했다.
설렘보다도 두려움이 더 큰 여행이 막 시작될 참이었다.
곧 어떤 어려움이 닥쳐올지 예상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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