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만난 친구가 그동안에 이혼을 했다고 한다
요즘은 이혼 혹은 별거라는 이야기가 그리 무겁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굳이 참고 살 필요는 없다' 라는 생각이 '자식때문에 참아야지' 하는 가치관을 앞지르는 것 같다.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다.
부부의 인연이 배신으로 인해 끊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를 다짐하고 앞으로 통쾌한 복수가 이루어져가는 것을 보며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즘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렇게 못하지만 누군가 속시원하게 그렇게 하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옛날에는 자식때문에 참고 산다고 했지만 그게 과연 자식때문에 참고 산 것인지는 모른다.
그것마저도 자신들의 이기심 때문이었을수도 있다.
참고 사는 부모밑에 사는 자녀들이 과연 행복했었을까?
그리고 부모는 자녀들에게 그걸 원하는지 물어본적이 있었을까?
자녀들의 의견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자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본인들의 이기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부모 세대는 참고사는 미덕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켜왔다.
거기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따랐을것이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친구 혹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갑자기 이혼을 했다고할때 어떤 반응이 먼저 나올까.
"잘했어. 나도 그랬으면 좋겠더라"
"좀 더 참아보지그랬어"
"요즘 그거 별거 아니야. 괜찮아"
이런 저런 답변들이 나올 수 있을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안된 나에게 갑자기 친구가 이혼했다고 말했을때 짧은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내 할 말 있는데 ... 내 사실 이혼한지 4년됐다"
....
머리속이 갑자기 바빠졌다.
이럴때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갑자기 이렇게 불쑥 이야기하는 친구가 밉다.
"니가 자꾸 애 아빠 안부를 물으니까 이젠 이야기해야될것 같아서. 그런데 나 이제 괜찮다. 이제 살거 같아"
친구는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짧게 들려줬다.
몇년 전 친구와 통화할때면 늘 그랬다.
"나 해그름해지면 아파트 아래 가게가서 삼겹살이랑 소주 한잔 하고 온다. 그러면 잠이 잘 온다"
그 말을 했을때 그때부터였나보다.
그렇게 술 한 잔 해야 잠을 잘 수 있었다는 친구는 결국 남편과 이혼을 했다.
도저히 한 공간에 있기가 싫었다고한다.
손이라도 스칠때면 소름이 돋았다고하니 이혼하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싶었다.
결혼하고 금방 아이를 가졌고 유난히 배가 불렀던 친구는
"배 많이 부르면 저만 힘들지뭐"라는 시누들의 수근거림을 들으며 시아버지 제삿날 홀로 설거지를 했다.
누군가 보살펴주는 걸 좋아했던 친구는 퇴근이 없는 남편과 살았고 아들이 최고였던 시어머니가 있었다.
이혼을 했다는데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편하다고하니 다행이다.
"잘했다. 우리가 얼마나 살거라고. 서로 안맞는데 억지로 사는 것도 고통이다"
"그래 우리 애들한테도 못할 짓이고. 그래서 헤어졌다"
다행히 중고생이 된 아이들은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고생했다. 이제 니가 원하는 삶을 살아라. 사랑도 받고"
이혼한 사람이 내 친구이기에 나는 친구가 다시 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람이 불거나 하늘이 파래서 예쁜 날이면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하늘이 겁나 파랗다. 커피 마시러 온나"
"아이고 두시간 반 버스타고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오까?"
"내가 커피 한 잔 선물 보낼테니까 니는 거기 카페로 가고 나는 여기있는 카페로 가서 커피마시면서 영상통화까하지뭐"
"됐다마 니나 마이 무라"
그렇게 별 영양가 없고 돌아서면 잊어버릴 그런 이야기로 잠시 수다를 떤다.
그것이 내가 친구를 웃게 하는 잠시간의 시간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건 모두의 바램일것이다.
그리고 노력했지만 기대했던 삶이 유지되기 불가능하다면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을것 같다.
이혼이라는 결론을 내기 전에 휴혼같은 쉼터를 이용해보는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버거운 사람들이 잠시 휴가를 갖는 것도 좋을것 같다.
그렇게 잠시 쉬면서 객관적으로 배우자를 바라보고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갖는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럼에도 서로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면 각자 서로의 길을 걷는 걸어야겠지.
내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