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내 통장은 늘 가볍다.
열심히 살았는데 내 통장은 늘 가볍다.
"여보 나는 통장에 돈이 자주 들어오는데 맨날 돈이 없다?"
"푼돈이 들어오고 목돈이 나가니 그렇지. 취업을 해야 목돈이 들어오지 이사람아."
이런 저런 활동으로 며칠에 한번씩은 입금란이 채워지는 내 통장인데 동그라미 하나만 더 찍히면 좋겠다.
가끔은 작은 금액이라도 월말에 일정금액이 입금되던 시절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때도 많다.
하지만 지금과 바꾸라면 또 그러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나는 조직생활에 필요한 유전자가 하나 모자라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직장다운 직장 생활을 해보지 않았다.
대학교 다닐때부터 과외선생으로 용돈을 벌었고 학생이 하나, 둘 늘면서 적성에도 맞고 수익도 괜찮아서 취업에 대한 생각을 접고 과외전선에 뛰어 든 것이 지금 되돌아보면 최고의 실수였던것 같다.
체육복 입고 슬리퍼 끌면서 도서관에서 죽돌이 했던 친구들이 번듯한 직장에서 대우받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같은 과 선배였던 남편은 건설회사를 다녔는데 지금은 전자 입찰을 하지만 20년 전만해도 입찰을 하러 각지로 다녀야했다. 새벽에 일어나 대구에서 울진으로 가서 입찰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김천 들렀다가 입찰하고 대구에 도착해 사무실에 가서 일을 마무리하고서야 집으로 왔다. 빠르면 밤 10시, 늦으면 새벽이 다반사였다.
출근은 있지만 퇴근은 없는 생활이었기때문에 첫 아이가 생기면서 과외를 그만두었다.
양육은 오롯이 내 몫이어야 했다.
물론 나중에 전자입찰로 바뀌어도 늦는 건 마찬가지였다는게 문제다.
남편은 참 알뜰한 편이다. 계획성도 있고 자신이 베풀어야 할때는 거리김 없이 베풀고 아낄때는 또 확실하게 아낄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 반대로 월급이 들어오면 이십일은 여왕같이 살고 열흘은 거지같이 사는 사람이다.
계획성도 없고 쓰는 것도 잘 쓴다. 하지만 나를 위해 옷을 사거나 가방을 사거나 화장품을 사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많이 쓴것 같다. 예전 엄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남편 몰래 몇십만원짜리 아이책을 전집으로 사고는 팔구만원 들었다고 했다. 옷이나 아이용품이 예쁘면 많이 사다 날랐다.
기본적인 보험이나 대출금 갚기, 적금을 제외하고는 거의 무계획이었던것 같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통장 관리는 신랑이 하고 있다. 친구들은 나를 세상편한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제관리 능력이 안되서 통장 관리권을 빼앗긴 사람이 바로 나다.
조금은 무신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나지만 그래도 좋아서 정신없이 빠져드는 분야도 있다.
아이들이 좀 커가고 무료하다고 느낄 즈음 마침 구독 중이던 신문사에서 시민기자를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 그런데 덜컥 합격을 했다. 내가 기사를 쓰고 지역 주재기사가 확인과 수정을 거쳐 본사로 보내면 시민기자 코너에 내 기사가 실렸다.
2년동안 시민기자 활동을 한 덕분에 지역 주간지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할 기회가 주어졌다.
프리랜서로 계약했기때문에 출퇴근은 자유로웠다. 일이 많을때는 속에서 토기가 올라 올 정도로 많고, 여유가 있을때는 낮시간에 동료 기자와 커피 마시며 수다도 떨고 취재거리 찾는다는 명분하에 드라이브를 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대형사고를 냈다.
특별 제작하는 책자에 주인공 이름을 잘못 쓴것이다. 모든 직원들이 원고를 봤고 그 분을 아는 직원이 세 명이나 있었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싸한 사무실 분위기에 숨쉬기는 것도 눈치보였다. 발송된건 어쩔 수 없었지만 발송 안된 책자는 회수해 잘못 쓴 이름 위해 새로 출력한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손이 모자라 친한 동생들도 불렀다. 너무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몇 달 후 나는 3년간 다녔던 신문사를 그만두었다.
한 달 정도 쉬는 사이 새로운 일이 들어왔다. 시정뉴스를 맡은 업체에서 대본 작업을 해달라고 했다. 글 쓰던 백수에게 글쓰는 일이 들어왔는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배우면서 하면 되지 하는 마음에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샘플을 보고 요령을 익히고 한 회차를 마무리하고 나니 할 수 있을것 같았다. 시청에서 뉴스 목록과 보도자료가 나오면 그것을 바탕으로 아나운서 멘트를 만들었다. 내가 쓴 원고를 기반으로 방송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흥분이 되기도 했다. 벌써 3년을 했고 올해 4년째 일을 시작했다.
지자체 기자단 활동도 하고 있다. 작게는 네 곳, 많았을때는 일곱 곳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지자체 SNS기자단은 각 지자체에서 선발해 홍보용 블로그나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인데 나는 사진을 찍고 원고를 만들어 제출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최적의 활동이다.
비록 하나이긴 하지만 강사로도 일하고 있다. 3년째 도서관 파견 강사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한다. NIE, 진로, 글쓰기 등을 책과 연계해 수업을 기획해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글쓰기 수업은 지금 코로나19로 잠정 연기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내가 하는 활동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비수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1월과 2월은 활동이 없다.
12월 해단식을 마치면 1월에 기자단을 모집하고 2월에 발대식을 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이 시작이 된다. 방송대본 작업도 3월말부터 시작된다.
비수기가 되면 얇은 지갑이 더 얇아진다.
"당신 월 수입 천만원은 되지?"
"뭣이라! 천만원?"
"분명 활동하는걸로봐서는 천만원인데......"
남편은 나를 놀린다.
어쩌면 나무라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바쁘기는 엄청 바쁜데 내 통장 잔고는 세자리수가 오래 안간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대책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보 나 동화 써볼까 싶은데?"
"가끔씩 말하는거보면 동화나 소설 속 사람 같이 허황되니까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지싶다"
남편의 이 말이 대책없는 마누라에 대한 같잖음이겠지만 칭찬으로 알고 밤마다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고 있다.
돈 관리도 못하고 대책도 없고 허황된 사람이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거 하고 살라는 남편이 있어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여보! 당선되면 한우 쏠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