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Apr 03. 2020

냉장고 정리 하는 남자

유통기한이 지나고 물러진 야채는 왜 당신 눈에만 보이지?

컴퓨터 앞에 앉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원고를 작성해 보내기도 하고 검색도하고 사진도 정리하다보면 몇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그런데 하필 집중도가 오를때 밥시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시동 걸어서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해 최고조에 올라서 십여분정도 시간이 더 필요한 시점에 하필 그때 신랑이 밥먹자고 한다.

"응~"

대답만하고 웅크리고 자판 두드리고 있다보면  주방에서 뭔가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불길하다.

냉장고 문이 열렸다 닫히고 뒷베란다 문도 열린디.

'에이 참... 뒷베란다 엉망인데 또 한소리 하겠네'

아니나 다를끼 불만 섞인 소리가 들린다.

"니 음식물쓰레기 뭐할라꼬 모아놓노? 냄새가 이게 뭐고?"

"버릴라 했는데 나갈때마다 잊어버리네?. 우리도 음식물건조기를 하나 사야될따"

자기는 절대 음식물쓰레기 안버려주면서 좀 모여있으면 난리다.

남편은 "남자가 폼빠지게 음식물 쓰레기를 우예버리노" 이러는 사람이다.

다른집 남자들은 음식물 쓰레기 잘만 버리두만 자기는 못버린단다.

나도 버리려고 하는데 또 하다보면 맨날 잊어버리고,  생각날때면 '내일하면 되지' 이러다보니 결국 가끔은 잔소리를 듣게 된다.

중얼거리면서도 뒷베란다에서 양파랑 감자를 가져온듯하다.

깎고 탁탁 써는 소리를 들어보니 오늘 메뉴가 짜장밥 아니면 볶음밥, 오므라이스 중 하나인것 같다.

"아빠 뭐해?"

"짜장밥 먹자 오늘은 "

부자지간에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도 들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집 안에 짜장소스 냄새가 가득해진다.

밥 먹으라는 소리에 주방으로 가니 식탁 위에 상이 차려져 있다.

오목한 접시에 밥을 담고 짜장 소스를 끼얹고 거기에 달걀후라이가 계급장처럼 하나씩 탁  올려진 짜장밥이다.

몇 가지 밑반찬을 내 놓고 저녁을 먹었다.

주말이 되면 종종 남편은 직접 식사를 챙긴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걸 해주기도 하고 김치전이나 배추전 같은 간식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금상첨화 맛도 좋다.  

새벽까지 원고쓰느라  아침에 내가 늦잠을 자는 날엔 달걀찜을 해서 아이들 아침밥을 먹인다.

한마디로 남편은 음식 솜씨가 있다.


그런데 주방이라는 공간을 의도치않게 공유하다보니 내겐 불편한 일이 하나씩 생기곤 한다.

굳이 몰라도 되는 것을 남편이 안다는 것이다.

보통 다른 집 남자들이라면 모르고 넘어갈일을 우리집 남자는 알아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통기한 지난  유부초밥이나 두부가 있다거나 야채칸에 시금치나 오이가 물러지고 있다거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나는 살림똥손 아줌마가 된다.

"먹지도 안하면서 뭐하러 사노"

"냉장고 야채칸 썰렁할까 싶어서 반찬 안 만들고 놔뒀나"

뭐 등등 이런저런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이럴때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말대꾸를 하는건 금물이다.

왜냐면 어쨋든 물증이 눈앞에 있기때문이고 그걸 먼저 발견한 남편이 화가 나있기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주방으로와서 그걸 음식물쓰레기통에 휙 버리고 쓱 딱고 다시 방에 들어와 버린다.

사실 나도 그게 있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주말이 되어야 아이들이 오고 주중에는 둘만 있다보니 주방에서 음식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며칠 지나면 그 사단이 난다.

그래서 남편이 주방쪽으로 가면 왠지 마음이 불안하다.

'뭐 또 발견하는거 아니야?' 

조마조마하게 뒷베란다 문이 안열리기만 바라는 것이 내 현실이다. 

우리집 뒷베란다는 보일러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일러와 세탁기가 놓이던 공간인데 요즘 세탁기는 그곳에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부피가 크다.

이사 들어오면서 우리는 세탁기를 앞 베란다로 빼고 짐을 두는 다용도실로 사용하고 있다.

시골에서 가져온 감자, 고구마. 쌀, 매실액 담근거, 양파, 재활용쓰레기통, 쓰레기봉지, 큰 냄비 등 갖가지 살림살이가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잠시 잠간 신경을 못쓰면 그곳은 엉망이 된다.

깨끗할때는 안보고 하필 '내일 정리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을때 꼭 문을 열어보는 남편이다.

남들은 신랑이 주방에서 뭘 한다고 부럽다고 하는데 잔소리 듣는 건 모르는 것 같다.

나만 그런가하고 물어보면 친구들도 냉장고에서 물러지는 야채 있다하는데  주방과 친한 남편 덕분에 나는 살림제로 부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랑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게 좋다.

남편은 잔소리를 하면서도 반찬을 하거나 상을 차리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

그럼 나는 내게 좋은 것을 취하면 된다. 맛있는 밥을 종종 얻어먹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10년정도 잔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제 그게 별로 스트레스가 안된다.

익숙해진다. 그러려니 하고 잠시만 기다리면 된다.

"살빼야 안되겠나" 하는 소리조차 노래로 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난하지만 꿈 많은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