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Sep 06. 2021

복숭아와 보리쌀을 바꿔 먹었던 그때그 시절

추억이달콤한 건복숭아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올해도 달콤한 복숭아를 꽤 많이 먹었다.

천도복숭아, 황도, 백도는 물론이고 색도 다르고, 맛도 다른 복숭아를 먹으며

여름 먹거리의 풍성함을 누렸다.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한복을 입고 쪽머리를 하고 그때 당시 50대였을 할머니가

보리쌀이 담긴 자루를 머리에 이고 우리 삼 남매를 앞세우고

10여분 거리에 있는 어떤 할머니 집으로 갔다.

그 집은 사과나무로 둘러싸인 우리 집과 달리  복숭아나무로 둘러싸인 집이었다.

할머니는 머리에 이고 갔던  보리쌀을 그 집에 주고 

그 보다 두 배는 넘는 부피의 복숭아 자루를 머리 위로 올렸다.

"할머니 다리 아파"라며 멀다고 징징 거리던 삼 남매는 

"할머니 빨리 가자"라며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할머니 머리 위에 있는 복숭아가 빨리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사과농사를 지었다.

지금은 생소한 홍옥, 국광, 인도, 골덴도 있었고 지금도 맛있게 먹는 부사 나무도 있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사과나무를 심은 덕분에 우리는 이른 여름부터 10월 말까지

각종 사과를 맛을 볼 수 있었다. 

사과나무를 하나라도 더 심으시고 싶었던 아빠는 

다른 과일은 자두나무 한그루만 심으셨다.

그런데 우리는 복숭아가 먹고 싶었고 결국 이웃집과 물물교환 방법으로 

자식들의 입에 복숭아를 먹여주셨다


보리쌀도 귀했던 70년대였다.

농사를 지은 덕분에 쌀도 보리쌀도 다른 집들보다는 여유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늘 돈이 궁했던 보통의 농사꾼 집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며느리한테 보리쌀을 몇 되 꺼내오라 해서 머리에 이고

손주들 앞세워서 복숭아 밭으로 가셨다.

보리쌀은 삶아서 밥에 넣어 먹으며 일주일은 먹을 양이었지만

손주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더 배부르셨나 보다.

무겁게 이고 온 복숭아는 이틀이면 없어졌다. 어쩌면 이틀도 안 걸렸는지 모른다.


맛있기도 하지만 그 이유만이 아니라도 나에게 복숭아는

어른들의 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과일이다.

엄마는 밭 가장자리에 복숭아 두 그루와 자두 두 그루를 심으셨다.

가금 옛날이야기를 하며 웃으신다.

"너희 아빠가 보리 들고 가서 복숭아 바꿔 먹는다고 얼마나 성질을 내던지..."

그랬구나. 엄마한테는 화를 내셨구나.

하지만 우리가 매년 여름이면 복숭아를 먹어봤으니 결국 아빠가 허락하신 거였나 보다.

우리가 커가면서  보리쌀은 우리가 들고 다녔다.

그리고 그 일은 복숭아 집이 복숭아를 캐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때꺼리를 복숭아로 바꿔 먹는 걸 용인해준 아빠와 그걸 이해시킨 엄마

그리고 무거운 보리쌀과 복숭아를 이고 걸어 다녔던 우리 할머니.

지금은 아빠도 할머니도 곁에 없지만  그분들을 생각나게 하는 복숭아는 매년 찾아온다.


바람에 떨어진 것을 얻었다며 사무실 동료가 복숭아 한 박스를 출근할 때 들고 왔다.

식사를 마치고 씻어서 먹으면서 또 나는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뭐든지 이런 추억이 있으면 참 좋겠어요. 맛이 다를 것 같네요"

부럽다며 한 동료기 한마디를 했다.

추억이 있고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과일이 있다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복숭아는 더 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뉘 집아들인지 참 잘 키웠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