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기적의 연속임을.
둘째 혼례를 마치고 첫째네와 여행 중이다.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난 둘째네 신혼부부와는 주초에 헤어졌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헤어지며 작은 손편지를 남겼다. 딸아이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한글과 우리말이 매우 서툰 둘째 사위 마이클(Michael, 미카엘)의 글귀가 눈물겨웠다. 잔치 당일 멋진 영어 스피치로 하객(특히 첫째네)들의 심금을 울렸던 아이지만 한글 필체만큼은 영락없는 ‘아기’의 그것이다. 우리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것인데 중간중간 영어식 한글 문장으로 전하고자 하는 그 성정을 가늠할 수 있었다. 착한 아이들, 여행 내내 행복하렴.
지금은 피닉스(Pheonix) 북쪽 자동차로 2시간 여 거리에 있는 세도나(Sedona)에 와 있다. 설명이 불필요한 애리조나의 명소. 1992년 7월 말 파나마 주재 첫 휴가 때 만 6개월이 지난 첫째를 둘러메고 장거리 자동차 여행 중에 들렀던 곳이다. 33년 만의 방문인 셈이다. 사위 데미안(다미아노)에게는 초행길.
강산이 세 번 변했음직 한데 붉은 기암절벽, 캐년은 그래도 의구한 듯하나, 기억에도 희미하지만, 도시와 거리의 모습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이제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어 며칠 사이 심심치 않게 한국인 가족 여행객을 거리에서, 트레일에서, 그리고 성당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3박을 하는 중에 성당(Church of the holy cross)을 매일 찾았다. 천주쟁이에게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곳은 세도나의 명소 중의 명소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지니고 있는 스토리도 스토리이지만(딸이 부모를 기리며 지은 성당, 지역에 기증) 70년 전(1956년에 건립), 이 황야에 외롭기 그지없었을 성당을 지을 생각을 어떻게 하였을까. 성당 홍보용 리플릿을 보니 당초에는 딸 마가렛 브룬스윅 스타우드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지으려던 것을 2차 세계대전 발발로 고향인 이곳 애리조나로 바꿨다는 설명이 있긴 하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강력한 볼텍스(vortex)로 세계적인 기 수련자들의 성지가 된 것과 맞물려 성당의 유명세도 그 디자인의 독특함과 더불어 글로벌한 수준이 되었다. 미사는 수요일과 금요일 각각 오후 3시 두 번만 있다.
세도나는 일출보다는 일몰로도 한 평가받는 곳이다. 기암괴석의 광활한 자연과 오염되지 않은 투명하고 순도 높은 대기, 무엇보다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토양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서일 것이다. 석양 뷰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은 점심이고 저녁이고 웬만해서는 예약하기 어렵다. 일몰 뷰 포인트인 세도나 공항(도시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다. 지금은 경비행기 전용)으로 오르는 도로는 초저녁 무렵엔 자동차로 일대 물결을 이룬다.
잠시 후면 이곳 세도나를 떠나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로 향한다. 첫째네와도 아쉬운 이별을 고해야만 한다. 시애틀로 돌아가 일상으로 복귀해야만 한단다. 오늘 이후로는 우리 부부만의 외로운(?)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허전함, 헛헛함이 몰려올 것이나 어쩌겠는가, 삶이 그러한 것인즉.
입사 동기가 보내온 글 속에 기억에 진하게 남아있는 것 하나. 아인슈타인이 말했다던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매사를 우연으로 간주하며 사는 유형들과 일상을 기적으로 여기며 이에 감사하고 겸손하게 사는 사람들. 우리 부부는, 가족은, 그리고 이웃은 고맙게도 두 번째의 인류들임을 믿는다.
어젯밤 실로 오랜만에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누렸다. 이즈음 서울에서는 그리고 속초에서조차 기대 난망할 그런 하늘이었다. 북두칠성(the big dipper, 이번에 새삼스레 확인한다)이 그 별무리 속에 뚜렷했다. 실로 얼마만이었는지. 세상은 별들과 함께 평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