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호(Navajo)와 밸리에 대해.

아메리카 원주민의 영원을 빌며.

by 최익석bomiromi

미국 대륙 원주민(아메리컨 인디언) 중 가장 큰 부족으로 체로키(Cherokee)족이 있다. SUV 자동차의 원조 지프(Jeep)의 서브 브랜드로 사용되는 바로 그 체로키. 영화 <그리스>(1980)의 존 트라볼타 보다 훨씬 이전 70년 대의 섹스 심벌로 이름을 날렸던 명우 버트 레이놀즈는 이 체로키족의 혼혈로 알려져 있다. 외모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이 버트 레이놀즈 주연의 서부 영화로 <Navajo Joe>라는 영화가 있다. 1966년 제작. 우리말로는 <방랑의 나바조 죠>로 개봉됐다. ‘Navajo’의 스페니쉬 발음은 ’ 나바호‘다. 무려(?) 70년 대 초 언젠가 초딩 때 이 영화를 시골 고향 동네 극장에서 보았다. 버트 레이놀즈가 나바호족 주인공으로 출연, 아내(악당 백인들이 죽이고 머리 가죽을 벗긴다)의 원수를 갚는 내용의 영화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고는 악당들이 아내를 죽이는 장면과 마지막 부분에서 버트 레이놀즈가 뒤로 돌아 넘어지며 던지는 도끼(대표적 이름이 토마호크. 나바호족의 도끼인지는 모르겠지만)가 악당 두목의 이마에 꽂히는 장면이다. 무자비한 마카로니 웨스턴 시리즈를 만들었던 세르지오 코부치 감독다운 작품이다. 음악 감독은 엔니오 모리코네.


세르지오 코부치는 당시의 여느 서부 영화감독들(예컨대 <역마차>의 존 포드 감독조차도)이 원주민인 ‘인디언’을 단역이나 미개한 야만인으로 표현한 것과는 대비되게 오히려 원주민을 주인공으로, 백인을 악당으로 묘사한 것으로 정평이 났었다. 일찍이 백인 중심의 미국문화를 나름 신랄하게 비판한 원조 감독인 셈이다. 영화 자체는 피가 낭자한 B급으로 평가되지만.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속 황야의 무법자>를 보면 안다.

<Navajo Joe>의 오리지널 포스터와 60년 대 말 국내 개봉 당시 단성사 신문 광고. 영화 속의 버트 레이널즈.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는 이 나바호족 자치지구 내에 위치한다. 초입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카옌타(Kayenta)에는 물론이고 밸리 내에도 여전히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방식과 풍습대로 살고 있다. 모텔 및 수퍼, 주유소, 맥도널드와 버커킹 등의 프랜차이즈 식당 종업원들의 거의 대부분( 99%?)이 이들 나바호족 또는 그들의 후손인 듯하다. 일하는 어른 및 맥도날드 안의 아이들 손님 할 것 없다.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순하고 예의 바르다. 객실에 전자레인지가 없어 프런트 로비에 위치한 식당에 햇반 익히기를 두 차례 부탁했다. 두 번 모두 다른 여자 종업원이 응대했는데 어찌나 수줍어하며 친절히 응대하는지 나도 함께 공손한 모드로 전환했다. 남의 일을 마치 자기 일처럼 지극 정성으로 다루고 대한다. 악천후로 예약한 오프로드 투어 가이드(여행사)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는 중에 다른 여행사의 가이드가 우리 부부 이름을 찾아내 연결해 주는 정성에는 눈물이 다 나올 정도로 고마웠다. 밸리 내에는 원주민 투어 가이드 여행사가 수십 개 존재한단다. 열악한 통신 및 인터넷 인프라 사정으로 예약한 여행사 이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모뉴먼트 밸리 내 원주민 가옥. 말(horse)을 이용한 투어에 종사한다.

밸리의 날씨는 시시각각 변한다. 변화무쌍하기가 실로 그지없다. 작년 5월 이곳을 먼저 여행한 선배(브라이언 BD Park. 수은이 아빠)의 사전 귀띔이 없었더라면 시뻘건 황야 한가운데에서 얼어 죽을 뻔했다. 눈발과 진눈깨비가 수시로 교차한다. 가이드 투어는 부득이 취소하고 과감히 자차 투어를 감행했다.

체감온도 영하 10도. 4월 하순에 접어드는 이즈음의 온도라니.


잘 알려진 대로 밸리는 5억 3천만 년 전 고생대기(Paleozoic Era)에 멕시코만 해저가 융기하여 이루어진 고원에 로키의 퇴적물이 쌓이고 침식, 풍화되어 이루어진 진기한 지형이다. 메사(Mesa, 테이블 같이 생겼다 하여)가 침식되어 뷰트(Butte, 외딴 봉우리)가 되고 이 뷰트가 더 풍화, 침식되면 스파이어(Spire, 날카로운 조각 같은 봉우리)가 된다.


이들 너머 환상적인 낙조와 석양을 기대했었지만 못지않은 잿빛 구름 속 거대한 사암 덩어리들을 즐길 수 있었다. 세도나가 잘 갖춰진 예쁜 정원이라면 모뉴먼트 밸리는 거친 동물들(봉우리들에 각각 엘리펀트, 카멜 등의 이름을 붙였다) 형상의 거대한 박물관이다. 17마일에 이르는 거친 황톳길을 오프로드 전용 SUV도 아닌 나의 렌터카는 고맙게도 잘 견뎌주었다.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 위의 마눌,
잿빛 구름 속의 사암 봉우리들. ‘엘리펀트’ 앞의 나의 애마 시보레. 말탄 모습으로 한방 찍히길 원했던 ‘역마차’ 속 포인트(‘존 웨인 스피릿’). 더뷰 호텔 가게 속 나바호족.

지금은 카옌타에서 자동차로 90여 분 거리의 페이지(Page)에 머물고 있다. 밸리에서와는 달리 날이 화창하다. 어제는 호스슈 밴드(Horseshoe Bend)를 둘러봤다. 영월 동강의 그것(아직 가보질 못했다) 보다는 스케일에서부터 다를 것이다. 주변 풍광은 당근, 완전 다른 세상이다. 여행객의 50% 이상은 서남아(특히 인도인), 중국인인 듯하다. 한 무리의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만났다.


33년 전, 밤중에 그랜드 캐년을 떠나 밤길을 하염없이 운전한 끝에 구세주처럼 만난 마을이다. 연료도 거의 ’ 엥꼬‘ 상태에서. 지금은 엄청 큰 크기의 한국 식당까지 성업 중인 제법 큰 도시가 됐다. 어제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으로 김치찌개와 LA 갈비를 정신줄 놓고 ‘눙물을 훔치며’ 흡입했다. 플래그스탭(Flagstaff)에서 첫째네와 헤어진 후 3일 만의 제대로 된 식사다.


오늘은 소문난 엔텔로프 캐년(Antelope Canyon)으로 향한다. 브라이언 박이 강추한 곳. 이곳에서 결혼 34주년을 맞는 우리 부부는 또다시 행복할 것이다.

Horseshoe Bend 위의 위풍당당 그녀.
Page의 한식당
숙소에서 바라본 페이지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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