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여정 따라가기
애리조나 북부, 유타와 경계를 이루는 부근의 작은 도시 페이지(Page)는 콜로라도강을 막아 세운 수력댐(Glen Dam)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소규모 마을이었다. 33년 전인 1992년 7월 말(8월 초?) 어느 늦은 밤에 숙소를 간신히 찾아 하룻밤 묵어 간 적이 있다. 아내와 생후 6개월이던 첫째를 안은 채. 인터넷, 핸드폰이 없던 오로지 종이 지도에만 의존했던 시절이다. 글렌 댐도 다음날 아침 무렵 브라이스 캐년을 향해 떠나는 중에 알게 되었을 정도로 지역에 대한 정보라고는 전혀 없었다. 마을 인구가 얼마였을까.
몇 차례 예약 취소라는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 로우어 안텔로페 캐년(Lower Antelope Canyon) 투어. 나바호족 가이드인 와이어트(Wyatt)는 좁고 구불구불한 계곡을 앞서 가며 설명하다 특정 포인트에서 머리 높이로 튀어나온 돌귀퉁이를 만지작 거리며 한소리 읊었다.
“머리 조심하세요. 제 말 안 듣고 나대다가 이 돌 저뀌에 머리통을 찧은 사람이 지난 2, 30년(two three decades) 동안 좋이 수백 만 명은 될 거외다.”
‘오잉? 2, 30년 동안이라고? 그럼 그전에는?‘
오전 캐년 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점심 식사를 위해 연이틀 다시 찾은 K-BBQ & TOFU. 서빙하는 총각은 어제의 나바호 총각 그대로이나 홀(hall) 매니저인 듯한 장년의 한국 아저씨는 어제의 그가 아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그가 다가와 맛있게 드셨냐며 말을 섞어 왔다.
“두 분만 여행 오셨나보네예…”
(한국인 관광객이 세 그룹 정도 식사 중이었다)
“아, 예… 실로 오랜만에. 33년 전에 이곳에 들른 적이 있죠. 많이 변했네요. 어제는 못 뵈었습니다만. “
본인이 쥔장이라며 내놓는 설명을 듣자 하니, 개업한 지 5개월 되었으며, 그전에는 LA 오렌지 카운티에서 장사를 했었고, 엔텔로페 캐년이 개방된 이후 관광객 증가로 도시가 팽창되었다고들 하더란다. 캐년 현지인 가이드가 2,30년 동안이라고 말했다면 그게 맞을 것이라고도 했다. 뒤늦게 확인해 보니 캐년이 일반에게 개방된 해는 1998년이다. 물론 원주민인 나바호족이 캐년을 발견한 때는 20세기 초다.
‘그럼 그렇지. 1992년에 캐년은 여행지도에 없었던 거쥐!’
브라이스 캐년은 1992년 당시 젖먹이었던 첫째를 가슴에 안고 오르내리느라 부득불 ’인증샷‘만 남겼던 곳이다. 선셋(Sunset) 포인트 트레일도 초입부만 밟았었다. 장년에 이르러 부부가 다시 같은 곳, 같은 흙을 밟는다. 봉우리 상단부인 후부(hooboo)는 100년에 작게는 30cm, 크게는 1.2M까지 풍화, 침식된다는데 33년이 지났으니 10cm 정도는 깎여 사라졌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트레일 위의 흙은 이미 같은 흙이 아닐지도 모른다.
빅토리아 가든 포함 총 3.7km의 트래킹에 도전한다. 허리가 여의치 않은 마눌은 이미 모뉴먼트 밸리 오프로드를 SUV 안에서 잘 견뎌낸 바 있다. 플래그스탭(Flagstaff) REI(아웃도어 전문 리테일러)에서 장만한 트래킹화(Oboz)의 성능도 페이지의 호스슈밴드와 엔텔로페 캐년 좁은 트레일에서 확인했었다.
투혼을 발휘한 마눌이 자랑스럽다. 마눌은 선셋에 더해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 포인트, 브라이스(Bryce) 포인트까지 모두 소화해 냈다. 아는 사람은 안다. 브라이스 캐년의 트레일이 얼마나 험난한지.(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