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여행 3

시간의 힘, 인연의 끈. 가족이 우주다.

by 최익석bomiromi

회사일로 몇 차례나 드나들었을까. 헤아리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일 수도 있다. 여행지로서의 라스베가스는 그닥 새롭지는 않다. 같은 또는 비슷한 이력으로 이즈음까지 이른 세대라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을 족적을 이곳 라스베가스에 남겼을(남기고 있을) 것이다.


가족 여행으로는 첫째 생후 6개월이었을 당시(1992)와 아이들이 각각 열넷, 열 살이었을 때(2006) 이후 세 번째가 된다. 이제는 가족이래야 마눌과 나, 단 둘에 한정되긴 하지만. 나중에 3세가 생기면 그때는 더 큰 개념의 가족 여행이 가능하기도 할 것이다.

외곽에 위치한 코스트코. 매장 입구 중심에 잘 자리잡은 전시대. 외화벌이꾼 직업병은 세월이 흘러도 가실 줄 모른다.

많이 익숙하다고 한들 간만에, 그것도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경우라면 ‘브랜드 뉴’ 고층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고 대형 호텔의 리모델링 포함 도시의 인프라가 크게 업그레이드된 것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0년이면 도시는 확실히 변한다. 현업을 떠나온 때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세월이란.


벨라지오 호텔의 ‘O’ 쇼를 이제서야 보고 난 마눌은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마눌의 인생 서커스 쇼란다. 멕시코시티, 보고타시티, 이곳 라스베가스, 그리고 서울 등지에서 태양의 서커스단(Cirque du Soleil) 공연을 이미 아니 본 것은 아니나 스케일, 연기, 난이도 등 어느 하나 기타 팀들의 그것들과 비할 바가 아니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무렴, 괜히 벨라지오의 그들이었겠는가. 뒤늦게라도 함께 할 수있어서 다행스럽기 그지없다.

라스베가스 내의 ‘리틀 이탤리‘. 몰랐던 곳. 식당가 작명도 인상적이다.
벨라지오의 꽃 정원. 모두 생화로 꾸몄다. 예전에도 이랬었던가 싶은 것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금요일, 우연히 세 명의 인연을 만났다.


인연 1. 프리미엄 아웃렛 신발 가게에서 만난 시니어 흑인 점원. 몇 마디 말을 건네오는데 주한미군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어디서 임무를 수행했느냐 물으니 캠프 케이시(Camp Casey)란다. 오 마이 갓. 방가와요, 방가와요! 내 고향이란 말이란 말이야. 게다가 나, 17 항공단 카투사 ‘공수’야!


인연 2. 웨스트 게이트(West Gate, 구 라스베가스 힐튼) 내 베니하나(Benihana). 같은 테이블 손님들과 결혼 34주년 등을 화제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시애틀에서 온 키가 훤칠한 백인 시니어 남자(부인은 중국계로 짐작) 왈, 항공기 엔지니어로 진주에서 3년 간 근무했었다고. 어게인. 방가와요, 방가와요! 나도 헬리콥터 항공단 출신이야. 내 큰 아이도 시애틀에 살아!

(1주일 지난) 34rh Wedding Anniversary라고 사케 두 ‘도꾸리’를 기프트로 받았다. 축하받는 기쁨은 아무 때고 좋고 크다.

인연 3. 베니하나에서 식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는택시 안. 중년의 백인 기사 왈, 안타깝게도 일본은 이미 토요일 아침이라고 위로(불금이 최고라는 의미로)의 말을 건네온다. 이 양반아, 나 코리안!…그랬더니 부산에서 주한미군 해군으로 복무했었다고. 어게인. 방가와요, 방가와요! 나도 8군 항공대(육군이다) ‘서전’이었다고!


하루에 세 번, 기이한 인연을 아주 평범한 기회에 만났다. 우리는 이미 전생에 이승에서 이렇게 기약 없이 만나고 기약 없이 헤어질 것임이 미리 기약되었을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남미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Sala de Uyuni)은 안데스 산맥의 조산 운동으로 형성된 내륙 고원(Altiplano Plateau)이다. 원래 물이 빠져나갈 곳이 없는 폐쇄수계의 호수(Lake Minchin)로 강수와 안데스의 빙하가 녹아내려 형성되었고 고온으로 말라 지금의 소금사막이 되었다. 태초에 바다가 융기하여 형성된 호수는 아니다. 소금은 암반 속의 염분이 녹아 쌓인 것으로 그 두께가 수 미터에 이르는 곳도 있다. 면적은 무려 10만 평방킬로가 넘는다. 서울의 17배, 제주도의 6배 규모의 광활한 면적을 자랑한다. 오랜 남미 주재 중에도 불행히도 가 본 적은 없다. 일만 너무 열심히(?) 했던 사유다.(뭐래…)


캘리포니아의 데쓰밸리(Death Valley) 내 배드워터(Bad Water Basin)는 육지가 붕괴, 함몰하여 생긴 분지에 주변의 물(강수)이 모여 형성된 호수가 말라 생긴 것이다. 우유니의 호수처럼 폐쇄수계로 달리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물이 고온에 말라 지금의 소금사막이 되었다. 데쓰밸리 자체는 넓고 광활하지만 소금사막 지역만은 77천 평방킬로 정도로 우유니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지구상 가장 건조하고 뜨거운 지역(섭씨 57도의 기록을 갖고 있다)에 북미에서 가장 낮은 분지(해수면 이하 85.5미터)다.

Bad Water Basin. 먹을 수가 없는 물이란 이유로 붙여진 이름. 강력한 모래바람과 이따금 뿌려대는 고약한 빗방울이 교차한다. 생명부재의 땅 데쓰밸리를 실감케 한다.
절벽 중간의 하얀 표지에 ‘Sea Level’이라 쓰여 있다. 북미 바다밑 최저 지역. 이스라엘의 사해(Dead Sea)는 해수면 대비 -430미터나 된다.
데쓰밸리를 떠나오는 중에 입구 즈음에서 만난 Inn. 기막힌 입지에 자리잡은 매우 예쁜 고급 숙소다. ’배드 워터‘지역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주차장과 로비를 동굴로 연결했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

안도의 긴 숨을 몰아서 내쉰다. ‘억겁의 시간과 공간’ 속을 통과하는 듯한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감사의 표시로 나도 모르게 두 손이 한데 모아진다. 복 되어라,부모로서의 책무를 잘 마쳤다는 뿌듯함도 아울러 솟아 올라온다. 비로소 삶의 한 여정을 마무리 짓는 듯하다. 생의 한가운데를 가끔 혼자 걷는 듯할 때도 있지만 결국엔 마눌과 나, 우리 둘은 늘 함께였다. 앞으로도 물론 함께일 것이다. 부부란, 가족이란 우연이 아닌 필연적 존재임을 믿는다. 그들이 우주다.


아이들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자기 주도적 삶을 주체적으로 잘 살아갈 것인즉, 지금까지보다도 더 아끼며 살아가야지.


마눌은 좌석 팔걸이를 걷어올리고는 잔뜩 웅크린 채 내 무릎을 베개 삼아 억지 잠을 청하고 있다. 시차와 협소한 공간이 주는 불편함과 괴로움도 잠시, 이내 우리는 서울에 안전하게, 사뿐히 내려앉을 것이다.

호스슈즈밴드(페이지) 위의 담대한 마눌. 그녀는 늘 나보다 훨씬 더 의연했다.
”Him adventuring remote desert “(첫째 사위 데미안 촬영 후 멘트, 세도나)
첫째 bomi 찍음(세도나). 큰딸이 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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