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바다 사이에서 봉사자로 살아가기.
소설가 이문구의 <관촌수필(冠村隨筆)>은 8편의 중. 단편으로 엮어진 자전적 연작소설이다. 1972년에서 1976년까지 복수의 잡지에 발표한 수필적 형태의 독특한 소설을 한데 묶은 소설집이다. 충남 보령 출신의 작가는 여러 이유로 서울을 떠나 귀향, 고향살이를 하며 겪은 체험을 글로 옮긴다. '관촌'은 고향 보령의 소설 속 지명인 셈이다. 해방 후 격변기에 좌익활동을 한 부친과 형이 무참한 죽음(형은 서북청년단에 의해 가마니에 쌓여 죽창에 찔려 죽었다고.)을 당한 가족사가 젊은 시절 내내 작가를 따라다닌다. 이를 피해 고향땅에 묻혀 지내며 펴낸 작품이 관촌수필 속의 연작들이다. 세태가 변함에 따라 예전의 고향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작가의 문명 비판적 시각으로 담았다. 이 중 일부(예컨대 수능에도 종종 출제되었다는 '공산토월(空山吐月)')는 연좌제를 피하기 위한 '커밍 아웃' 목적의 소설로 평가되기도 한다. 암튼, 독특한 어휘와 문체로 한국 현대문학사에 한자리를 꿰찬 이문구에게 고향은 풍부한 글거리를 제공한 소중한 소재였다.
낙향 또는 귀농하여 예술활동을 했던(하던, 하는) 작가들은 이문구 전후로도 숱하게 많았겠지만 현재 진행형인 이들 중에 소설가 공지영이 있다. 경남 하동 섬진강가 어드메엔가에 집을 짓고 정원과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일찍이(?) 2010년 경을 전후로 지리산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지인들의 생활을 글로 옮긴 적이 있어(<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지리산과 섬진강변 생활이 익히 익숙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작심하려 하니 설렘과 함께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오더란다. 두려움이란 바로 '고립과 어둠'. 왜 아니었겠는가. 도시(그것도 서울) 생활을 하던 이가 밤이면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고 장중한 산과 강에 폭풍우라도 몰려올 양이면, 겨울철 삭풍이 외롭게 서있는 시골집을 칼로 베듯 할퀴고 갈 양이면 홀로 사는 이가 어찌 무섭고 외롭고 고독하지 않았겠는가. 그럴 때마다 공지영은 이탈리아의 '수비아코(Subiaco)'를 떠올린다고 한다. 수비아코. 로마에서 동쪽으로 73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성 베네딕토(480~547 AD)가 당시 로마의 타락과 세속화, 부패, 방탕한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혼자 떠나 동굴 생활을 하던 곳. 그 어두운 동굴 속에서 성인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시편을 외우고 또 외우며 비바람과 어둠이 몰고 오는 두려움을 극복했다면서 공지영 자신도 고립과 어둠의 두려움을 시편 127편을 읽으며 극복한다고 했다.(가톨릭신문, 2025.5.11일 자)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지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
(시편 127(126), 솔로몬의 순례의 노래)
월요일이 휴일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2주 째다.
4월 말, 둘째 혼사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시작한 삶이다. 한 달 후 6월 하순이면 이곳 포구에 둥지를 틀고 동명항을 바라보며 살기 시작한 지 어언 1년이 된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여객선과 분주히 오가는 어선을 바라보며 지내기를, 오르지는 못하고 산책 삼아 오가기를 또는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좋은 설악과 함께 지내기를 벌써 1년이라니.
와중에 덜커덕, 다시 시간과 루틴한 일상에 매인 생활에 뛰어들었다. 마눌과 함께 번잡한 세상과 한 발짝 떨어져 지내며 관조(?)하며 살아가리라 했던 계획이 한순간에 틀어졌다. 하늘의 소명(召命)이라고 믿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책무는 이미 무사히 마쳤음이니. 3년 여 정도 생각했던 지역살이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나부터도 궁금해진다. 건강만 무탈하다면 그 이상은 능히 헤쳐갈 것이다.
아니, 하늘의 뜻이라면 아예 뿌리를 내려야 할런지도.
덧:
교종(교황) 레오 14세의 사목 표어는 <In Illo Uno Unum>이다.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뜻이란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라는데 이는 공교롭게도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시편 127편 해설(Expositio in Psalmum CXXVII)'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공지영이 읽곤 한다는 시편 127편의 바로 다음 편(128편)으로 이해된다. 표어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짐작되는 구절은 이렇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이 모두
그분의 길을 걷는 이 모두!"(시편 127, 1)
127편이 왜 서로 차이가 날까 궁금하여 그 앞을 살펴보니 시편은 분량이 많은 9편에서 9-1편, 즉 10편으로 구분되어 이어진다. 결론은, 공지영의 127편은 실질적으로는 126편,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시편 128편은 127편이 되는 셈이다.(잘은 모르겠지만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