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동 성당 사람들 1.

‘원 바드리시오’ 사제

by 최익석bomiromi

찬미 예수.


“저 비석을 내가 세웠어. 처음에는 지금의 성모상 자리에 있었는데 언젠가 와보니 저 아래 주차장 주변에 옮겨져 있는 거야. 걸리적거린다고 여겼던 거지.”


“그러더니 다시 저 자리에 옮겨 놓았어. 그래도 좀 낫지. 지금 주임신부가 그리한 거 같아…”


오전 미사를 위해 다시 방문하신 전세권 바오로 신부.

예의 활기찬 인사와 함께 사무실에 들어서시더니 문밖 성당 마당 한 구석에 세워진 비석을 가리키며 일장 언설을 풀어냅니다.


“이 성당을 세우신 양반이야. 엄청 고생했지. 사무장은 이런 스토리를 다 알고 있어야 해!”

“(머리를 조아리며) 아무렴요. 지당하신 말씀…

주변이 꽃밭과 함께 깔끔하게 잘 단장되어 있어 최근에 세워진 비석인 줄 알았아옵니다. 아직까지 성당 구석구석을 미처 돌아보질 못했습니다. 송구하옵니다. “


노사제는 이내 제 손을 잡고는 비석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봐봐. 원 바드리시오 신부 이 양반이 애란에서 태어나 일제 때 건너와서는 옥살이까지 했어. 그리고 전쟁통에 이 성당을 지은 거야. 내가 1979년 이곳 주임신부로 부임하기 직전 선종하셨기에 이 비석을 세워 드린 거야…! “

”아, 바드리시오! 패트릭…. 근데, ’ 애란‘이라 하옵시면 어디를 이르는 것이옵니까? “

”(그것도 모르냐는 어투로)어… 아일랜드! “

”아, 아일랜드…“

‘원 바드리시오(Patric McGowan, 파트리치오) 신부는 아일랜드 출신의 성 골롬반(Columban, ‘작은 비둘기’란 뜻을 지닌다고)이 세운 외방선교회(Foreign Mission Society) 소속의 사제셨더군요. 비석 측면에 바오로 신부님이 기록해 놓은 연보를 보면 1939년 11월 ‘조선’에 입국, 강원도 평강에서 사목활동을 하다 이내 일제에 의해 춘천 모처에 3년 8개월 간 감금됩니다. 전쟁 중에 피난민들과 함께 동명항 옆 돌산에서 석재를 옮겨다가 성당을 세우고는 이후 세 차례, 총 16년 여를 이곳 언덕에서 주임 사제로 목자의 소명을 수행합니다. 1979년 7월 29일, ‘애란’의 성 골롬반 대신학교에서 선종.

‘만남의 방’에 걸려있는 역대 주임신부 사진액자 속에는 원 바드리시오 신부가 1대, 3대 주임사제로 기록되어 있네요. 초기 재임 기간의 구분 기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신부님, 미사 시간 다 됐아옵니다. 들어가셔야 하옵니다.”

“이크, 5분 전이구나….”


성당으로 되돌아오려는데 평소 보질 못했던 대형 럭셔리 크루즈선 하나가 항구에 정박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어제 신문 기사를 보니 바하마 국적의 극지 탐험 크루즈선 시닉 이클립스 II(Scenic Eclipse II)라고 합니다. 새벽녘 입항, 하루 온종일 여행객을 시내에 풀어놓았다가 늦은 오후 포항, 부산을 거쳐 일본 오사카로 향하는 일정이라는군요.


원 바드리시오 신부 추모 비석과 함께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지상(바다)의 여유와 평화는 하늘이 허락하는 것일 겁니다.


미사 후 연로하신 자매 누님(?)들이 바오로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년의 주임 신부 시절 함께 믿음의 세월을 나눈 자매들로 짐작되는군요. 점심 식사에 모실 요량으로 보입니다.


“뭐해요, 후딱후딱 아니 나오시고. 빨랑 운전대 잡으시구랴.“

“뭐야, 내 차로 가자고?”

“그럼요. 우린 차 읎슈.”

“오케이. 네 명은 탈 수 있어. 가자고…”


구식 아반떼(AVANTE)에 기세 좋게 오르신 바오로 신부, 능숙하게 차를 몰고 성당 마당을 빠져나갑니다. 87세의 사제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알렐루~~~~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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