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온라인으로 구입한 책자가 오늘(6.4일) 오후에 도착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손가락을 잘 못 놀려 같은 책을 두 권이나 주문했다.
‘나도 어쩔 수가 없군. 늙으면 죽….‘
<도마복음…>은 전혀 모르는 작가의 검증 안 된 책이지만 도올의 그것(도마복음 이야기)과 비교해 보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 다른 두 권의 도서는 설명이 불요한 작가들의 책이다.
까를로 로벨리의 책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를 펼쳐 들었다. 원제(I knew it, here, above the Haro river)와는 사뭇 다른 제목이다. 전작 중 하나인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과 그 결을 같이 하려는 국내 출판사의 마케팅 의도로 엿보인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듯이 “우리가 세계의 일부임을 깨닫고, 모든 존재와의 연결성을 인식할 때, 우리는 더욱 공감하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을 강조하는 저술이다. 원제는 <장자> 중에서 장자와 혜시가 호수의 다리 위에서 물고기를 내려다보며 주고받는 변론에서 따왔다. 이전의 역작들 대비 철학적으로 보다 심오하다. 번역(김정훈)은 읽기가 더 수월해졌다. 이전보다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좋은 책을 펴내 준 출판사(쌤앤파커스)에 감사드린다.
(6월 4일) 오전 미사.
에페소의 바오로가 그곳 교회의 원로들과 작별을 고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원로들에게 바오로는,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예수의 말씀을 명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사도행전/Acts, 25, 35) 그랬구나. 바오로는 생전 본 적도 없는 예수의 저 아름다운 말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고, 기억하고,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구나.
부활한 예수는 하늘로 오르기(승천) 전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한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악에서 지켜주십사고.(요한 17, 15) 사제(이기범 요셉 신부)는 복음 내용 중에서도 예수의 기도 앞부분에 방점을 찍었다.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까를로 로벨리의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 ‘는 말은 예수의 ’ 하나 됨‘에 다름 아닐 것이다. 공격적 무신론자인 도킨스와는 달리 부드러운 자연과학자, 이론물리학자로서의 무신론자인 로벨리는 그런 면에서 예수와 닮아 있.다.
동명동 성당에 작은 여자 아이 하나가 있다. 얼마 전 성당 행사(성모의 밤)에서 앙징맞으나 현란한 춤사위를 보여 공동체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주변에 물으니
초등학교 6학년생이란다. 요즈음 또래 학령의 아이들에 비해 약간 작은 듯하다. 한 마리 작은 새 같은 모습이다. 이후 사무실에 몇 번 찾아든 이 작은 새를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말하는 모습도 그리 예쁠 수가 없다. 나를 두고 ”선생님! “이라고 칭하는 어법이 바르고 또렷또렷하다. 이는 오히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몇 년은 더 성숙해 보인다.
며칠 전, 사무실 한쪽 공간에 여느 사진 액자들(예컨대, 프란치스코 교황Pope과 교구 주교 등)과 함께 쌓여 있는 그림 액자가 있어 들춰보았다. 색연필로 ‘하나됨•평화’란 글씨가 쓰여 있다. 춘천 교구 사목 표어다. 필체를 보니 어린아이의 그것 같은데 묘하게 ‘작품’이라는 느낌적 느낌이 전해진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리 느껴졌기에 액자에 담아 두었겠지. 동료 자매(율리안나)에게 확인하니 위의 그 여자 아이 작품이란다.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닌 듯하다.
율리안나 자매에 따르면 아이는 모 자매의 손녀다. 오늘(6.4일) 오전 미사에 마침 그 자매가 참석했다. 간단하나 가볍지 않은 수술을 받고 막 퇴원한 그녀를 위해 사제는 미사 중 따뜻하게 축하, 격려의 박수를 나눴던 차다. 아이의 작품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 게 손녀 따님 솜씨가 맞는지요? “
“아유, 부끄럽게시리. 제가 치울게요…”
“아뇨 아뇨. 너무 예뻐 제가 갖고 싶어서요.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이고, 아이고… 이를 어쩔…!”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이리 쌔벼 가겠슘미당당당…!“
사무실로 몇 발자국 옮기다 되돌아 서서 다시 되물었다.
“근데, 손녀 따님 이름이 뭔가요?!”
아이의 세례명은 마르첼리나… 이다.
세례명도 아이만큼 예쁘다.
때마침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의 취임 선서를 관통하는 시대적 의제는 ‘국민 대통합, 공존,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다. 모두를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음을 5,200만 공동체에게 선서로 맹세했다. 지켜보자.
묘하군.
하나됨. 그리고 평화.
까를로 로벨리와, 사도 바오로와, 예수와.
그리고 초딩 6학년 마르첼리나 여자 아이와.
그리고 우연하게도 2025년의 대통령의 맹세가 하나로 연. 결. 되어 있.다. 기적인가?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