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에 대하여...

위대한 기도 속의 단어 하나, 용서

by 최익석bomiromi

신약성경에는 '주님의 기도(주의 기도)'는 두 군데에 기록되어 있다. 그중 하나인 루카 복음에는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에게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자기들에게도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제자 하나의 요청에 예수가 응하는 장면이 나온다(11, 2-4). 이때 예수가 일러준 기도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문의 절반 정도 분량이다. 중간이 생략된 형태다. 반면, 마태오복음에는 풀버전이 기록되어 있는데(6, 9-13) 직계 제자였던(마태오복음이 세리 출신 그 마태오에 의해 쓰였다는 전제 하) 마태오가 예수로부터 직접 들었던 가르침을 기술했으리라 추측해 본다면 내용과 그 정확도를 더 신뢰할 수 있겠다.


마태오복음에서의 '주님의 기도'(얼마 전까지는 주의 기도, 60년 대 중반까지는 '천주경'이라 불리었다. 2025.6.19. 이기범 요셉 신부)는 그 유명한 산상 설교(산상수훈, The Sermon on the Mount, 마태오 5장-7장)의 일부다. 산상 설교는 말 그대로 산 위에서의 가르침으로 마치 새로운 계명을 하나하나, 조단조단 일러주는 형태로 이어진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여기에 포함된다. 군중 중에는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온 이들도 있었으나 주요 청중은 유대인이다.

산상 설교(산상 수훈)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갈릴리 호수 북서쪽의 Mount of Beatitudes. 팔복산이라 불린단다. 물론 가 본 적은 없다.(자료 출처: 인터넷)

루카는 이를 평지에서(on the Plain)에서 일러준 것으로 기록했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까지 포함된 것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아 마태오보다는 더 광범위한 청중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짐작된다. 의사였던 루카의 시선이 평등과 배려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설교 장소와 대상 또한 이를 반영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주님의 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마태오복음 기준으로 앞부분(6, 9-10)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경외를(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그 나라가 오시며,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소망), 뒷부분에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했듯이 우리 죄도 용서해 주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음은 물론 악에서도 구해주시길) '나와 이웃'에 대한 바람을 기도한다. 십계명(1-3 계명은 하늘, 4-10 계명은 이웃)이 그러했듯이 '주님의 기도' 또한 하늘과 이웃에 대한 감사와 소망, 바람을 기도한다는 것이다.(2025.5.21일. 김성은 베드로 신부 동명동 성당 견진 강의에서 인용) 기복(祈福)이나 구복(求福)의 내용은 없다. 아울러 내세에서의 영생 또한 구하지 않는다. 하늘의 뜻이 바로 여기,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기도문 속의 감사와 소망, 바람은 계명(誡命, commandment)으로 작동하지만 또한 계(戒, vigilance)이기도 하다. 지켜야 할 룰(rule)이자 스스로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가이드이다. 이러저러한 죄를 짓지 아니하도록, 잘못을 하지 않도록,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다짐을 하는 의미가 '주님의 기도'에는 있.다.


개인적으로 이 위대한 기도문에서 가장 주목하는 단어는 '용서'다. 말이 쉬워 용서이지 어디 말만큼 용서하기가 쉽다던가. 원수를 사랑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단연코 용서다. 용서 없이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움을 넘은 증오는 이를 품은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지만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용서의 대상은 둘째 치고라도 그 자신을 구한다. 용서가 말만큼 쉬운 것이라면 어찌 예수께서 하늘에 대해 갈망하기를 나와 타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용서해 줄 수 있기를) 하셨겠는가.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것은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자비로운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로되 그들 또한 자비를 입을 것(마태오 5, 7)이고,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도 누군가의 잘못이 생각이 나면 그에게 먼저 가서 화해(용서)를 하란다.(마태오 5,23-24) 예수는 그 시대의 간음한 여인조차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해 주며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요한 8, 11)

짙은 먹구름이 조금씩 옅어지더니 파란 하늘이 살짝 옅보이기 시작했다. 날씨도 마음새에 따라 실로 함께 따라 움직인다.

용서가 상호적(mutual) 임은 '주님의 기도'에서 예수가 단정적으로 말한다. 기도하는 법을 일러주는 그 말미에서 예수는 일갈한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오 6, 14-15)


선종(2019. 11.12일)한 차동엽(노르베르토) 신부가 예수보다 더 명쾌하게 한 줄로 정리한 바가 있다.


"용서가 뭐냐구요? 어떻게 하는 거냐구요?

용서를 영어로 포기브니스(Forgiveness)라고 합니다.

FOR, 남에게.

GIVENESS, 주어라.

걍, 남에게 줘 버려라...입니다.

남에게 그냥 주는 것, 그게 용서입니다."


20여 년 전, 멕시코 주재 시절 출퇴근 자동차 안에서 그의 CD를 듣던 중 귀가 번쩍 뜨였던 대목 중 하나다.


처음으로 성체조배실이라는 곳에서 기도를 한다. 40년 천주쟁이로서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천명했던대로 기도는 자기 고백일 뿐더러 계(誡, 戒)를 실행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일이거늘 진지한 의미로서의 기도가 생활 속에 자리 잡지 못했다는 증좌다. 언필칭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터라면 일상 속에서 게으름과 노여움은 스스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성체조배실. 가운데 눈동자 같이 생긴 곳에 성체를 모셔둔 방이다. 종종 영화 속에서 유사한 디자인의 공간이 묘사되는데 아마도 이에서 모티프를 얻었을 수 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니 잿빛 비구름으로 내내 어두웠던 하늘이 살짝 옅어져 있다. 성당 내에서는 주말 저녁 어린이 미사가 진행 중이다. 아이들 노랫소리가 오르간 소리와 함께 창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두 어 시간 후면 마눌이 귀향한다. 꼭 일주일 만이다.

저녁 무렵, 하늘이 개이던 중에 석양빛이 스며들었다. 내일은 필히 날이 개일 것이다.

덧:

기도에 대한 단상은 목요일(6.19) 미사 중에, 성체조배는 토요일(6.20) 초저녁에, 글 마무리는 오늘(6.21) 한다. 봉사의 삶. 생각보다 짬내기가 만만치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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