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서울>: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

손잡고 함께 가는 우리의 길...

by 최익석bomiromi

(스포 있음)


TV 앞에 편히 앉아 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는 짬을 좀처럼 내기 어려운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와중에 틈틈이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어렵사리 완주했다. 미쿡의 두 딸아이 보미로미의 강추도 있었고 배우 박보영의 1인 2역(엄밀히 말하면 1인 4역이다.맞바꾼 쌍동이 역을 그 바뀐 역에 맞춰 또 연기한다.)이 화제 만발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작품의 넷플릭스 영어 제목은 <Our Unwritten Seoul>이다. 단어 '미지'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그리고 '서울은 미지(unknown, strange)의 도시'라는 뜻으로 중의적으로 쓰였다. 그런데 왜 넷플릭스는 Unknown이나 Strange가 아닌 Unwritten이란 단어를 선택했을까, 가 내내 궁금했었다.

이미지 화보 중 하나. 역시, 서울은 모르는 도시라고 밑자락을 깔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스토리를 이해하고 소화하는 것은 전적으로 시청자의 몫일 것이므로 주제나 제목에 대한 정답이 있을 수 없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그 이유를 주인공의 또다른 이름인 '미래'에서 찾았더랬다. 미지와 미래. 살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또는 알 수 없는, 또는 이상한 미지의 이 현실 세계, 의 미래 또한 무엇이라 규정하여 '써내려 갈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작가와 감독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 싶은... 과연 이들은 마지막 화(<마지막 첫 페이지>)에서 이런 의도를 내비쳤다. 인생은 끝이 있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채워야 할 노트이고, 빈 페이지를 마주한다 하더라도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아직 쓰여지지 않은 우리 이야기의 첫 페이지라는 거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뒷부분인 제11화(<그 문장의 끝에서>)에 있었고, 찬란한 마지막 에피소드가 해피엔딩의 방점을 찍는다.


호수(배우 박진영)의 엄마 연분홍(배우 김선영. 호수의 계모다)은 급성 난청으로 나머지 귀의 청력까지 잃을 수 있는 절망적 상황에서 스스로 문을 닫아 건 "피도 안 섞인 짐덩이" 호수에게 감동의 명언들을 쏟아 낸다. 그 중 하나. "사랑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지더라도 한편이 되는 것.'이라는 호수 아빠의 유언(사실은 연애시절 엄마가 헤어지자는 아빠에게 해 준 말이다.)이 되버린 말을 눈물과 사랑으로 전한다. "떠내려 가지 말라고 니가 나를 붙잡아 준 것"이고, "서로 붙잡으라고 아빠가 너랑 나랑 연결해 준 거야."라는 대사가 이어진다.


미지는 또 어떠한가. "내가 나인게 너무 괴로워서" 스스로 문을 닫고 살았던 좌절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그녀를 닭내장탕 식당 할머니 현상월(=김로사, 배우 원미경)이 위로한다. 그냥 너 잘하는 것 하며 살으라고, 문만 두드리라고. 이내 미지는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나도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다."고, "문만 열어 제끼면 된다."고.

절망의 순간에 미지와 호수는 동시에 문을 연다. 둘은 서로 마주하며 ’함께‘가 된다. 문만 열어제끼니 하나가 된 거다.

드라마는 담담한 대사 속에서 자못 웅장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김태이(배우 홍성원)가 방에 스스로를 가둬둔 누나(김수연, 배우 박예영)에게 미래가 전하는 쪽지(카드)를 방문 틈으로 들여보내는 장면에서 독백 내레이션이 흐르기를(제11화):

내일을 약속한다는 건 기대가 아닌 다짐.
걸어온 길은 후회로 가득하고 걸어갈 길은 두려움 뿐이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이 길을
함께 걷겠다는 결심.
마지막 결말이 초라함뿐이어도
끝까지
앞으로


이 대목은 문득 연초에 읽었던 최대환(사도 요한) 신부의 책을 다시 뒤져보게 했다.


"환원 불가능한 과거의 결과에 신음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불안해하는 것은 인간의 조건입니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인간사의 연약성'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각 개인의 공동체가 좋은 삶을 이끌어갈 수 있었던 가능성은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마치 바다에 솟아난 섬들처럼 '위대한 시작'을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데 기인합니다.(...) 해방되지 못한 과거의 일과 불투명한 불신과 불안의 어두운 미래의 시간 안에서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의 근거 때문입니다."(최대환 신부,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 p.294)

사목자이자 연구자로서 인간에 대한 깊은 천착이 돋보이는 역작. 신학, 철학, 문학, 음악, 영화 등 인문학 전반에 대한 사제의 방대한 여정을 엿볼 수 있다.

태이가 누나 수연에게 전한 미래의 쪽지 내용은 이렇다.


옆에 없어도 저는 항상 선배와 함께였으니
부디 선배에게 너그럽기를.
자기(미래)에게 그러했듯이
다정하기를.


'그들' 모두가 문을 열고 나오니 그곳엔 '가족' 있었다.

가족은 사랑에 다름이 아니니 과연 가족이 우주(사랑이 처음과 끝, 모두인...)임을 <미지의 서울>에서도 확인한다. 공교롭게도 <폭싹 속았수다>의 아픔과 고난, 연민 등을 담은 감성과 감동과 대비된다. 박보영의 1인 2역과 아이유(이지은)의 1인 2역도 포맷이 유사하다. 둘 다 성장드라마이자 지나치리만큼 과도했던(특히 폭.속) 가족주의의 서사도 같다. 용서와 화해(미.서.에서는 미래미지의 엄마와 할머니, 호수와 호수 엄마, 호수와 로펌 선배 이충구)를 담은 내용도 비교된다.


어쨌거나 이 대목에서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줄로 찾아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80~90년 대의 대표적 저항가요이자 노동가요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은 시인 김남주의 같은 제목의 작품에 곡(변계원, 1988)을 붙인 노래다. 변계원은 당시의 저명한 서울대 노래패였던 <메아리>의 일원(국악과 87학번)이었는데 정작 메아리보다는 이후(1991년)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가 불러 널리 회자됐다. 운동가요 이전에 연대의 염원을 담은 시 자체와 멜로디가 좋아 즐겨 들었었다. 노찾사 합창곡 외에 대표 노래꾼 중 하나(김광석도 초기에 함께 활동했다.)였던 걸출한 가객 안.치.환 솔로 버전이 있으나 감정 과잉이 단점이어서 그의 이 노래만큼은 좋아하진 않는다. 가사(시)의 주요 부분은 이러하다.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
노.찾.사.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 실렸던 앨범(1991). 정태춘의 이름도 보인다.


시어 '동지'를 '가족'으로 치환(써놓고 보니 치.환.이다.)하면 기가 막힌 가족간 사랑의 노래가 된다. 물론 단체나 모임의 이름으로 대체해도 똑같은 느낌과 감동을 받는다. <미지의 서울>의 작가(이강)가 김남주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중요하지도 않지만, 전해주는 감동은 적어도 내게는 같다. 긴 설명이 덧없다. 강추.


https://youtu.be/edvjE01knHo?si=PRUUh8HbOXj7kDqd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은 가톨릭의 생활성가로도 널리 불렸다. 시어(노랫말) '동지'를 '형제'로 바꿨다. 노래패 <메아리>나 <노.찾.사>의 버전이 떼창으로서의 민중가요 특유의 힘과 선동성이 느껴진다면 성가로서의 이 노래는 매우 서정적이고, 따라서 당근, 종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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