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장엄미사곡> 중 <베네딕투스>를 들으며 취하는 휴식...
벗에게.
1.
한밤중, 베토벤의 <장엄미사곡(Missa Solemnis Op.123)>를 듣고 있습니다. 야심한 시각에 음악을 듣는 것을, 그것도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대곡이라면 더더욱, 질색하는 마눌에게 찜빠 한번 먹고는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이내 헤드폰으로 바꿨습니다. 언감생심, 얄팍하디 얄팍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과 천박한 귀로 '장엄미사곡'을 감상하고 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근래에 이르러 마음의 여유를 다소간 잃은 듯한 일상이 약간 우려되어 진지한 음악이 듣고 싶어진 까닭입니다. 오죽하면 어제, 그리고 오늘 두 차례 연거푸 미사를 걸렀겠습니까. 여유가 없이 정신이 산만한 이유는 밀도 있는 삶에서 한동안 멀어져 있던 탓입니다.
'장엄미사곡' 중 4악장 '쌍투스(Sanctus, 거룩하시도다)', 그중에서도 특히 '베네딕투스(Benedictus, 찬미받으소서)'를 반복하여 듣고 있습니다. 미사곡에서 '쌍투스' 자체가 큰 분량(길이)이 아니고 더더구나 '베네딕투스'는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에서 바로 그 "찬미받으소서"에 해당하는 짧은 파트입니다만, '장엄미사곡' 속의 '베네딕투스'는 상대적으로 길게 연주되는군요. 폰 카라얀의 베를린 필 연주곡 기준으로는 약 12분 20초의 길이입니다. 주의 깊게 들어보니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테너, 소프라노 독창과 혼성 합창이 모두 어우러집니다. 하지만 역시 압권은 내내 흐르는 섬세한 바이올린 솔로이군요. 소프라노 솔리스트 또한 바이올린 연주만큼이나 매우 곱고 가녀리며 따라서 섬세합니다.
베토벤 스스로 '장엄미사곡'을 자신의 작품 중 최고라고 평했다지요. 가톨릭 가정에서 나고 자란 탓에 라틴 미사 형식에 정통했고 <합창 교향곡>과 같은 대작을 여럿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전통적인 교회 음악가라기보다는 종교 형식을 빌려 '철학적 인간'의 깊은 내면을 표현한 작곡가로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역경 속 불굴의 삶을 살았기에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베토벤은 '장엄미사곡'의 '기리에(Kyrie,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앞부분에 "마음으로부터 - 다시 마음으로 가기를!"이라는 헌사를 써넣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소망을 피력한 것일텐데, 이 소망은 오늘날에도 현재진행형일 듯하군요.
2.
양자이론의 대가이자 자신의 '루프 양자역학'의 창시자인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장엄미사곡'을 해석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베토벤의 '장엄미사곡' 중 '베네딕투스'에서 바이올린 곡은 순수한 아름다움과 순수한 절망, 순수한 행복을 표현한다. 그 곡 속에서 숨을 가다듬으며 가만히 멈춰 있으면, 신비로운 감각의 원천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의 원천도 바로 이것이다.
카를로 로벨리는 자신의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의 마지막 부분(이중원 역, 쌤앤파커스, p.216, 2019)에서 바로 이 '장엄미사곡'을 끌어들입니다. 그는 '베네딕투스'의 바이올린 독주는 베토벤이 음악 자체를 종교로 삼아 내면의 종교적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그에게 '베네딕투스'는 '시간의 원천'입니다. 과연 양자물리학의 대가 이론물리학자다운 시각입니다. 그는 당연히(?) 과학적 무신론자입니다.
카를로 로벨리가 또 다른 자신의 신작 도서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I knew it, here, above the Hao river), 2025)>에서 에릭 바타글리아(독일의 바리톤 가수이자 음악가)와의 이메일 대화를 소개한 부분도 매우 멋집니다.(p.51~p.53)
저는 요즘 '베네딕투스'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당신(카를로 로벨리)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를 그 곡으로 마무리했죠. 종교적 시각을 보여주지 않는 고백적 형식을 사용하지만(...), 베토벤도 당신이 "시간의 원천"이라고 규정한 곳부터 박자에 상관없이 바이올린을 오선보의 심연에서 고독으로 내려오게 만드는 듯합니다.(...)
저는 '장엄미사곡' 전체가 관찰 가능한 우주와 관찰 불가능한 우주에 대한 일종의 거대한 알레고리라고 생각해요.(...) 베토벤의 정신의 눈으로 본 우주죠.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베네딕투스'가 가지는 "시간의 원천"이라는 이미지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에릭 바타글리아도 거의 이론물리학자에 다름 아닙니다. 괜히 두 사람이 서로 삘이 꽂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https://youtu.be/J-qAqWNj9zA?si=XIoSn4EIeOZwaO5U
3.
어느새 날이 바뀌었군요. 그러고 보니 오늘(7.11)은 성 베네딕토(Saint Benedic)의 축일입니다. 몇몇 교우들께서 베네딕토(한자식 표기로는 분도) 세례명을 지닌 지인, 가족을 축하하기 위해 미사예물을 넣었더랬습니다. <장엄미사곡>을 듣고 있는 것은 순전히 우연입니다. 신비롭군요.
당연히 궁금하여 찾아보았습니다. '베네딕투스'와 베네딕토 성인의 이름 '베네딕토'는 어원이 같습니다. 찬미와 축복. 주는 자와 받는 자. 능동과 수동의 차이만 있는 듯하군요. 알렐루~야!
4.
지구촌(북반구)에 폭염이 휩쓸고 있습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일상을 영위하기가 힘이 듭니다. 요 며칠 휴식을 취하지 못한 탓인지 소생도 별 수 없이 더위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부분 혼자 지내고 있는 사무실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대기에는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종을 생각하면 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구형 선풍기라도 존재만으로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래도 어제오늘은 바람이 꽤 선선했습니다. 서늘한 동풍(정확히는 북동풍인 듯합니다. 한여름에 북동풍이라니요. 이리 고마울데가.) 덕분이라는군요. 산맥 저 너머와 산중은 펄펄 끓는다던데, 그리하여 대부분 섭씨 36도가 넘는 가마솥이라는데 이곳 포구는 그나마 30도를 밑돕니다. 바람결은 불가사의하게도 초가을의 그것 같습니다. 기후변화 난리통에 동편마을에 둥지를 틀고 이곳 공동체와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음은 모두가 하늘의 보살핌이 있으셨기에 가능한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당근, 알렐루~야!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