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지름길
1.
지난주 중국 전승절 기념식.
천안문 성루로 이동하며 푸틴이 시진핑에게 말을 건넨다. 물론 통역이 붙었다.
곁에서 나란히 걷는 김정은은 이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당최 모르는 표정으로 묵묵히 계단을 오르고 있다.
'생명공학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장기를 계속 이식할 수 있다며? 나이 먹을수록 젊어지며 심지어는 불로장생까지 할 수 있다는데?...'
시진핑이 답한다.
'그러게. 금세기 내에 인간이 150세까지는 살 수 있을 것이라는데?...'
핫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온, 이들 불멸을 꿈꾸는 두 무지막지(?)한 '군주'의 대화가 로이터를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에 타전됐다.
'숭칙한 늙은이들 같으니라고...'
지금 현재 이 두 사람이 나이는 만 72세로 거의 같다. 불멸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150세까지는 살면서 앞으로도 한 30년은 더 '해 처먹으려'는 듯했다.
미국의 금융인이자 정치가 버너드 바루크는 자신의 나이 85세 때에 이렇게 말했단다.
'노인이란 언제나 나보다 15세 많은 사람을 말한다.'
곰곰이 되짚어보니 과연 그렇다. 언젠가부터 나도 나보다 대략 열댓 살 위인 시니어를 노인이라 부르는 경향이 있어 왔다. 이리 따지면 일흔두 살의 시진핑과 푸틴은 내게는 전혀 노인이 아니다. 그저 나이 예닐곱 살 정도 더 많은 장년일 뿐이다. 자신들은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믿음 속에 절대권좌를 누리며 호의호식 살아갈 것임이 분명했다.
2.
신부와 목사와 랍비가 자기가 죽어 관에 뉘었을 때 사람들이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지 이야기했다.
신부가 말했다.
"'정의롭고, 정직하고, 자비로운 분이었다'라고 한다면 좋겠군요."
목사가 말했다.
"'친절하고, 공정하고, 교구민들에게 상냥한 분이었다'라고 한다면 좋겠군요."
랍비가 말했다.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군요. '저 봐, 시체가 움직여'."
누구나 불멸을 꿈꾼다.
우디 알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나는 작품을 통해서 불멸을 얻기는 싫다. 나는 죽지 않음으로써 불멸을 얻고 싶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기는 싫다. 나는 내 아파트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이상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p.245~246, 문학동네, 2010)
3.
지난 8월 마지막 주, 동명동 성당 금요일 아침 미사.
매월 이 날은 미사 후에 돌아가신 이들을 위한 '연도'를 바친다. 올해 선종한 망인들의 이름을 써서 제대 앞에 붙여 놓고는 가톨릭 특유로 가락으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거다. 어리버리한 채로 이들의 명단을 정리하면서 화살기도를 날렸다. 만나 본 적은 당연히 없으며 이름조차 생소한 그들을 짧게라도 위무했다. 그러면서 일단의 보람을 느낀다. 매일 연미사 미사예물을 올리며 그들의 이름을 적어 넣을 때와 같이.
지난 주말.
성당이 관리하는 인근 묘지(성모동산)에 안장된 고인들의 가족에게 일일이 문자를 날렸다. 추석 맞이 벌초와 벌초비 납입을 안내하는 문자다. 그러면서 또다시 일단의 보람을 느낀다.
그랬는데, 묘지를 관리하는 어르신(42년 생이시니 내 기준으로도 노인이다)이 난감한 얼굴로 황망히 사무실에 들어섰다. 성당 주보를 손에 쥔 채. 내가 올해 인상된 벌초비를 깜박 잊고 예년의 비용으로 안내했다시는 거다. 고생 끝에 날린 문자에도 동일하게. 어르신의 설명이, 인건비 인상으로 작년 가격으로는 더 이상 묘지를 관리할 수 없단다.
'아뿔싸!... 어쩌겠는가. 다시 문자를 보내야지..'
지난한 고생 끝에 문자를 다시 보냈다. 주보는 다행히 주위에서 도와준 끝에 수작업으로 수정을 마쳤다. 마음 밑바닥에서 슬며시 짜증 기운이 올라옴을 느낀다.
'나도 별 수 없군!'
주일.
두 차례에 걸쳐 사제와 수녀, 그리고 봉사자가 병자성사와 환자봉성체(병환으로 성당 나들이를 할 수 없는 교우들의 가정을 방문, 성체를 나누는 예식)를 드린 어르신이 기어이 선종했다. 93세. 위령미사와 장례미사, 그리고 삼우미사가 연이어 봉헌될 것이다. 공동체의 교우 여럿이 이번에도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임에랴.
4.
얼마 전, 스물아홉의 손주(아들)를 사고로 잃은 할머니와 그 어머니(며느리)가 피눈물을 흘리며 연이어 미사를 참례했었다. 달리 위로를 드릴 수 있는 방법을 몰라 직권으로 무료 미사예물을 넣어 드렸다. 공황 상태의 그들 할머니와 며느리는 경제적으로도 많이 힘든 듯했다.
유난히 죽음과 관련된 일을 연이어 겪는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가 순간순간 흐려지고 흐트러지고 있다. 이만한 일들로 누적된 피로에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있는 거다. 부끄럽구나.
두어 달 전, 사무실에 날아든 우편 인쇄물에서 우연히 아이유(가수 이지은)의 '작품'을 접했다. 그러더니 며칠 후 또 우연히 라디오에서 바로 이 노래를 들었다. 우연인 듯한 필연은 그렇게 겹쳐졌다. 아이유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새삼 이 어린 가수의 진정이 담긴 음악세계를 재평가하게 됐다.
“나 지친 것 같아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것 같아 그대 있는 곳에
돌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면 좋겠어 “
(아이유, <무릎>, 부분)
https://youtu.be/SfeaTW4bcAw?si=e2nk8TFzEdBUw9_I
그녀의 노랫말마따나 망자 뒤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들은 그들이 있는 곳에 돌아갈 수 있는 지름길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천안문 성루 3인방은 예외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