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마리아여, 보우하소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간절함
스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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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에게.
다시 새벽입니다.
구름 잔뜩 낀 하늘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자연은 변함이 없으니 신(조물주)은 늘 '바로, 여기'에서 삼라만상을 컨덕팅 하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오랜만에 잠실의 월드타워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시애틀의 첫째가 강추한 <F1: 더 무비>를 마눌과 함께 관람했죠. 월드타워가 자랑하는 수퍼 플렉스(S.PLEX)나 '광음 시네마' 관에서 관람하려 했으나 아쉽게도 시간이 맞질 않았습니다. 소문대로 대단하더군요. 상업성 짙은 웰메이드 대중영화입니다. 감독(조셉 코신스키)과 제작(제리 브룩하이머)이 환상 콜라보입니다. <탑건: 메버릭>의 바로 그 콤비죠. 오리지널 스코어와 음악을 맡은 이는 한스 짐머. 배우는 잘 아시는 대로 빵 아우, 브래드 피트(Sonny 역)입니다. 여기에 하비에르 바르뎀(Ruben 역)이 가세합니다. 일단 이들로 인해 이 영화는 그냥 '먹고 들어가는' 셈이죠. 스피드를 소재로 한 영화인지라 전개되는 서사의 속도도 매우 스피디합니다. 여차하면 대사를 놓칩니다. 음악(사운드)은 말할 것도 없죠.
스토리는 다소 진부합니다. 베테랑(빵 아우)과 신진 루키 죠슈아(댐슨 이드리스)의 조우 및 긴장, 갈등, 화해 그리고 우애. <탑건:메버릭>의 재현입니다. 베테랑의 귀환이라는 점에서는 <돌아온 장고>나 <황야의 7인> 등 서부극의 클리셰도 묻어납니다. 마지막은 감격의 신파성 해피 엔딩이죠. 브래드 피트의 잘 다져진 몸은 톰 아우(톰 크루즈) 보다 오히려 낫더군요. 당연하겠죠. 키도 훨씬 더 크고 젊기도 더 젊으니.
몇몇 명대사와 장면이 귀에, 그리고 잔상으로 남습니다.
F1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소니는 다시 방랑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다다른 곳이 바하(Baja) 캘리포니아의 사막 레이싱 현장. 남루한 멕시칸 관계자에게 다가가는 소니.
"우린 많이 못 줘...."(멕시칸)
"돈이 문제가 아니야.(It's not about the money)"(Sonny)
"그럼, 뭐가 문젠데?(So what is it about?)"(멕시칸)
이 대사는 영화 중반에 소니와 루벤 사이에서도 오고 갑니다. 마치 우리 영화 <곡성>의 명대사, "그럼, 뭣이 중한디?"를 연상케 하죠.
이런 상태로는 이길 수 없다(We can't win)는 루벤에게 소니가 말합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이길 수도 없지.(We can't if we don't try.)"
이런저런 희망 섞인 바람으로 승리를 그려보는 팀 멤버들에게 소니가 말을 던집니다.
"희망은 전략이 아니야.(Hope is not a stratey.)"
이전 대회에서 지는 바람에 써먹지 못한 찬스를 마지막 그랑프리에서 쓸 수 있게 되자 루벤이 말합니다. 실은 그전에 소니가 루벤에게 한 말이기도 하죠.
"때론 지는 것이 이기는 거야.("Sometimes when you lose, you win.)"
그러게요. 이 말을 여기서도 듣는군요.
"느리면 부드럽고, 부드러우면 빠르다."는 대사도 여러 번 등장합니다만, 영어가 잘 귀에 안 들어오더군요.
찾아보니 이렇습니다. 우리말 번역이 아~~조오 간결하고 유려합니다.
"Sometimes there's this moment when I'm in the car when everything is peaceful and no one can catch me. In this moment, I'm flying."
마지막 랩(Lap)에서 결승점을 향해 무아지경으로 나아가는 소니에게 경이에 찬 팀원들이 외칩니다.
"소니, 저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
수석 엔지니어이자 사랑을 나눈 바 있는 케리 콘던(Kate 역)이 이 말을 그대로 받습니다.
"He is flying!"
한물 간 소니를 비즈니스 항공 티켓을 쥐어주고 런던으로 데려온 루벤(왕년의 레이싱 파트너이자 절친, APX 대표)에게 에이피엑스(APX) 팀 경영진이 빈정대듯 자기들끼리 대놓고 말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Hail Mary) 데려온 건가?"
"'헤일 메리'는 미쿡 카우보이들 세계의 말이라지?"
"아니, 걔들 미식축구 용어라는데?"
(대사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 위와 같은 내용임.)
이 말을 들은 소니가 툭~하고 말을 던지며 자리를 떠나죠.
"아니, 원래는 종교 용어야."
헤일 메어리(Hail Mary)!
당근,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졌습니다. 하여, 서치 해 보았겠죠. 내용은 이렇습니다.
메어리(메리)는 성모 마리아(Maria)입니다. 미식축구에서 유래된 용어가 맞더군요. 라인맨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쿼터백이 전방의 리시버들을 주시합니다. 혼전 중에 공을 던질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먼 거리에 있는 우군 하나를 발견합니다만 공을 던져도 받을 확률이 낮아 보입니다. 난감한 심정으로 온 힘을 다해 그곳으로 공을 던집니다. 그리곤 속으로 외친다죠. "성모 마리아여, 보살피소서!(Hail Mary!)" 정황으로 보면 우리 정서로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미식축구에서 하필이면 왜 헤일 메리?' 인가 싶어 더 찾아보았습니다.
오리진은 미국 대학미식축구의 명가(名家) 노터데임(노틀탐, Notre Dame) 대학교입니다. 노틀담은 잘 아시는 대로 '우리들의 성모님'이란 뜻이죠. 1930년 대 미식축구의 전설을 써 내려가던 노터데임, 그때 어느 경기 중에 쿼터백이 가망 없는 롱패스를 하면서 외쳤다는 거죠. 헤일 메어리!
노터데임은 미국 최고의 가톨릭 명문 대학입니다. 워싱턴 D.C의 유명한 조지타운大, 보스턴의 보스턴칼리지(이 둘은 모두 예수회가 세운 대학입니다. 한국의 서강대처럼. 제 모교죠. ㅋㅇ)와 더불어. 둘째네가 이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에 만나 결혼까지 했겠죠. 동문 선후배 커플입니다.
가톨릭 대학이다 보니 미식축구에도 가톨릭 정서가 배어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경기 중에 무심결에 나온 외마디가 '헤일 메어리' 였겠죠. 그 이후로 비슷한 상황에서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외치는 주문이 '헤일 메어리'. 루벤이 소니를 데려올 때의 심정이 '헤일 메어리'였던 겁니다.
더 찾아보니 영어의 Hail은 원래의 '우박'이라는 의미 외에도 '만세, 건배'라는 뜻이 있군요. 나치가 외쳤던 구호 '하일 히틀러!'의 하일(Heil)과 그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히틀러 만세!'라는 뜻이었죠. 1930년 대의 미식축구에서 유래된 '헤일 메어리'와 비슷한 시기의 독일 나치의 구호 '하일 히틀러'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시대 이 대목에서 저도 외쳐봅니다.
"헤일 메어리!(성모 마리아 님, 살피소서!)
공교롭게도 지금의 제 처지와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군요. 알렐루~야!
덧:
로버트 레드포드가 작고했군요. 자신을 빼다 박았다(고 생각했음직한)는 빵 아우를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에 캐스팅, 오늘의 그가 있게 한 장본인이죠. 한 시대가 또 지나감을 절감합니다. 명복을 빕니다. 나중에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