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Apostle)의 길...
벗에게.
1.
그이와 첫 대화를 나눈 것은 2년 여 전 서울 성당 공동체 형님들과 속초 여행을 하던 어느 날이었죠. 성모상 앞 초봉헌함 인근 주변 잔디밭을 호미(였던 것 같은)로 일구고 있는 그를 보았습니다. 속초를 오갈 때마다 간간히 참례했던 몇 번의 미사로 그가 주임신부임은 금방 알아챘습니다.
"아니, 신부님께서 직접 이리 노동을 하시는지요?"
앉은 채로 작업 중에, 서있는 우리 일행을 올려다보며 그는 말했죠. 내리쬐는 햇볕에 눈이 부신 듯했습니다.
"아, 예.... 이 정도는 제가 해야죠."
어느 날 오후, 작업복 차림의 그가 사무실로 들어섰습니다. 순간 사무실 공간에 오줌 지린내가 진동했습니다.
'아니, 어디서 화장실 정화조를 비우고 있는감?'
사무실 집기에 익숙한 그는 이곳저곳을 열어보고는 몇몇 연장을 챙겨 다시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아항... 저 양반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중인 거구나...'
짬만 나면 성당 경내를 일일이 확인하고 이상 유무를 챙기곤 하는 그는 곧잘 화장실 청소도 손수 한다고 했습니다. 공동체의 정신적 쉼터인 이곳이 여행객 교우가 자주 방문하는 명소(?)인지라 특히 화장실은 늘 청결해야 한다고 믿는 그입니다. 오줌 지린내는 그런 그의 몸과 옷가지에 스며 그렇게 사무실까지 묻어왔던 겁니다.
사무실 휴무시간에 자주 재활용 쓰레기장을 점검합니다. 기다긴 복더위 여름날에 행여 쓰레기가 부패할 새라 주의를 게을리할 수 없는 탓이죠. 소생의 중요 책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헌데, 소생의 손길이 닿기도 전에 벌써 쓰레기 장이 말끔히 치워져 있곤 하더군요. 그것도 번번이.
'아항... 이 양반이 이미 다녀 가셨구먼!'
2.
"아니, 이런 큰 일을 하셨던 분이 이런 일을 꽤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이 어떤 일인지는 설명 아니 드려도 아실 테지만."
공식적 첫 대면을 하는 자리에서 그가 소생에게 묻더군요. 제가 내드렸던 이력서를 꼼꼼히 들여다보셨겠죠. 허긴, 역지사지로 저라도 궁금하고 기이했을 겁니다.
"섭리라 생각하고 임하겠습니다."
지난 연말, 제 처와 함께 찾아뵙고는 둘째의 관면혼배 주례를 부탁드렸었습니다. 서울서 지역살이차 내려온 부부라고만 알고 계실 때였죠. 저희도 여기서 터 잡고 살게 될 줄도 몰랐지만 둘째 혼배까지 치르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그때까지도 그는 저희 부부와 저희 아이들(동생 부부의 증인을 언니인 첫째네가 서 주었습니다.)에 대해 자세한 프로필이나 내막은 거의 모르고 있었죠. 관면이 있은 후 두어 달 만에 성당과 그와의 인연은 그렇듯 신묘하게 이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섭. 리. 라 여기며 소명을 다하고 있는 중이죠. 순. 명. 의 자세로.
3.
레바논 베이루트 북쪽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비블로스라는 지역이 있다죠.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라고도합니다. 이곳 배후의 고산 지역에는 레바논삼나무(향백나무)가 서식한답니다. 그 유명한 고대 페니키아 상인들이 배를 건조할 때 주요 재료로 삼았던 나무요 목재죠. 이들은 이들 삼나무를 특히 이집트에 수출했습니다. 대신 사 온 물품이 파피루스(papyrus). 이 도시의 그리스식 이름 비블로스(Byblos, Byblinos)에서 유래합니다. 비블로스 상인(페니키아 상인)들이 이들 파피루스를 에게해 연안으로 되파는 교역을 했던 것이 그 이유라죠. 성경이 바이블(Bible)이라 불리는 사유도 '파피루스로 만든 책'이라서라는 겁니다.(주경철 교수, <바다인류>, p.80, 2022)
"신부님, 저 나무 이름이 뭔지 혹시 아시는지요? 웬 여행객 자매 하나가 전화로 문의해 왔었습니다. 나무가 너무 예뻐 인스타에 올리려 하는데 이름을 모르겠다는 거예요."
"저거요? 바레인... 향백나무."
"아항, 레바논향백나무~~ 우.... 그래요? 저게 바로 그 유명한 레바논 삼나무~~ 우?"
"아, 맞아요. 레바논... 어플을 갖다 대면 나와요."
"이레네 수녀님은 제주도 비자나무로 짐작하시던데 향백나무군요?"
강원도 양구 산골 출신의 그도 이 나무가 궁금했었던 모양입니다. 궁금하면 찾아보는 그와 그냥 뭉개버리는 저와의 차이랄까요. 주위 사물과 소소한 일상, 어쩌다 들렀던 식당의 마케팅(?) 문구까지 시시콜콜 기억해 내는 그입니다. 도구 다루는 데에도 능숙합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저는 그이를 문. 이과 통섭형 사제라고 불러드렸습니다.
4.
예수가 손수 뽑으신 열둘을 가리키는 '사도(아포스톨로스/그리스어, Apostle/영어, Apostol/스페인어)는 '사제'와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제는 '훈련받은 자'입니다. 반면에 사도는 '파견된 자'라는 뜻이라죠. 신약의 4대 복음서에는 사도라는 표현이 의외로 적다고 합니다. 마태오에 한 번, 마르코에 두 번, 루카에 열두 번,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는군요. '사도'란 말이 많이 등장하는 곳은 당근, 사도행전인데 무려 육십 번. 4대 복음에서 예수는 열두 제자를 가리킬 때 주로 '제자들', 사도행전에서 루카는 '사도들'(그것도 늘 복수로. 초대교회에는 사도들이 사도단으로 활동했다는 의미.)이라고 표현했습니다.(송봉모 신부, <교회의 탄생>, 2025, p38-40 요약)
그렇군요. 이 땅의 사제들은 '파견된 자'들로 불려야 마땅합니다. 우리 모두는 양들이자 우리야말로 제자, 나아가 공동체를 이루는 주인. 예수가 파견한 사도들은 이들 공동체의 양들을 이끌고 밀어주는 역할을 '미션'으로 수행한다고 믿습니다. 교회(에클레시아)가 건물이 아닌 나눔과 섬김, 사랑이 늘 함께하는, 말 그대로의 '공동체' 자체라고 한다면 이들을 이끌고 미는 이는 파견된 사도입니다.
이기범 요셉 신부가 내일 새로운 소임지 말레이시아로 '파견'됩니다. 4년 반 전, 코로나(코비드 19)로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되돌렸던 바로 그곳으로 다시 파견되는 거죠. 누군가가 소감을 묻자 그는 "그냥 주어진 대로 사는 거죠 뭐.."라는 투로 덤덤히 답하더군요. 그러면서도 싫지만은 않은 표정입니다. 이곳 공동체에서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을 다했으므로 새 임지에서도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으실 겁니다. 가톨릭평화방송 사장인 조정래 신부는 “사제는 뭘 하고 싶어서 하거나 막 가슴 뛰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는 합니다만.(가톨릭다이제스트, 2025. 7)
평범하지 않은 인연으로 맺어진 그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옴니버스 옴니아, Omnibus Omnia)"(코린토 1, 9, 22)일 수 있는, 변치 않는 ’실천하는 사도‘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소망합니다. 알렐루~~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