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잠이 참 많다. 저녁에 몇 시에 잠자리에 들든 상관없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늘 같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 친구가 끓여 놓은 커피를 마신다. 직장 생활을 하던 그땐 어떻게 매일 그 시간에 출근을 했나 싶다.
오늘 아침엔 9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근처 남산 도서관까지 걸어 책을 빌리러 나섰다. 겸사겸사 운동도 할 겸, 책도 빌릴 겸. 날을 잘 잡은 걸까 포근한 봄날 같았다. 해방촌 오거리까지 언덕을 올라 소월로를 지나 남산로를 따라 걸었다. 약간은 뿌연 하늘 아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아름다웠다.
책을 빌려 집으로 오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나는 경상북도 봉화군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매일 아침 2km를 걸어서 다녔고 왕복 4km를 걸었다. 십리길을 걷던 친구도 있었으니 5리 길은 말도 못 할 시골이었다. 그 어린 코흘리개 나이에 2km를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걸었나 싶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런대로 걸을만했다. 겨울은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아침에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대충 말려 집을 나서면 학교에 도착할 때쯤 머리엔 고드름이 열리곤 했다. 헤어드라이어가 없던 시절이니 그럴 수밖에. 나무가 타닥타닥 타 온기가 더해진 교실에 막 들어서면 눈 녹듯 머리의 얼음이 사라지곤 했다. 선생님은 늘 일찍 오셔 난로에 불을 지펴 놓으셨고 그게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다. 나무 타는 냄새도 좋았다. 보리차 끓는 냄새도 좋았다. 아이들은 난로가에 옹기종기 모여 불을 쬐고 선생님은 철 난로 안에 나무를 넣으면 불기를 살폈다.
2km의 길을 걸어 집에 올 때면 늘 배가 고팠다. 겁이 많던 나는 혼자 집으로 오는 게 그렇게 싫었다. 장날엔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엄마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게 기뻤고, 트럭이라도 한대 지나갈 때면 먼지 뒤에서도 행여 태워줄까 신나게 손을 흔들던 댔다.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도 차가 서면 부리나케 달려가 뒤에 탔다. 덜컹덜컹 엉덩 방아를 찧어도 그저 좋다고 깔깔거렸다. 여름이면 찔레를 꺾어 먹고 가을이면 무를 뽑아서 먹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길을 걸었다. 열이 펄펄 나도 학교를 가야 했던 건 그나마 양호실에선 약을 탈 수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 그렇게 먼 길을 아무 일 없이 잘 보냈다는 게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매일 그렇게 왕복 2km 걸었던 나는 지금 건강한 폐와 튼튼한 몸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히말라야 4천 미터에서도 고산병이 없었고 산을 오르내리면서도 별 탈이 없었다. 그땐 그렇게 힘들고 싫고 탈출하고 싶었던 나의 어린 시절 그 길, 지금 돌아보니 누구보다 소중한 추억을 가졌고 누구보다 행복한 추억을 가졌다.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가끔 돌아보는 게 참 행복하다.
그때 그 친구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