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을 만들며 _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2

by 봄사랑 김춘애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1980년대는 자장면이 귀했다. 읍내에서 2km나 떨어져 살 던 내게는 더 그랬다. 자장면은 아주 특별한 날만 먹던 별미라는 건 다 알겠지만, 우리 집은 그 특별한 날이 운동회 단 한 번이었다. 생일이라고 자장면 먹으로 2km를 걸어가 저녁을 먹는 일은 언감생심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끔 자장면이 먹고 싶을 땐 직접 만들어 먹었다. 고기도 귀할 때라 돼지고기 넣은 자장면은 꿈도 못 꿀 때다. 밭에서 나는 감자, 호박, 양파를 썰어 넣고 기름에 볶다가 춘장을 넣고 같이 볶았다. 그리고 물을 붓고 간을 맞추면 그걸로 끝. 면은 직접 만든 칼국수 면이나 미리 사둔 소면이었다. 밥에 부어 먹은 기억은 없다. 그땐 자장은 늘 면에 부어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자장 소스를 밥에 얹어 먹은 건 한참 후에 일 같다.


고기도 없고 전분도 없을 때다. 미원과 설탕이 전부일 때. 그래도 그 자장면이 맛있었다. 그땐 그랬다. 한없이 초라하고 심플하지만 그땐 그게 별미였고 특식이었다.


한 달 전쯤인가 슈퍼에 갔다가 춘장 하나가 눈에 띄었다. 진미 춘장. 3분 자장 소스를 살 수 있었지만 굳이 춘장을 들었다.


'옛날 생각하면서 한 번 만들어 봐야지'


오늘 돼지고기도 넣고 전분도 넣고 설탕도 제대로 넣어 맛있는 자장면을 만들었다. 중국집 자장면과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한 맛이지만 어려서 먹었던 맛에 비하면 훨씬 나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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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마당엔 수도 펌프가 있었다. 수돗가엔 양은솥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 시절 집집마다 마당에는 솥이 한두 개 걸려 있었을 거다. 그 냄비는 국도 끓이고 밥도 하고 국수도 삶는, 다목적용이었다. 겨울엔 쓸모없었지만 여름엔 늘 그 솥에 모든 요리를 다 해결했다. 물초롱(함석으로 만든 물통을 우리는 초롱이라 불렀다) 바닥을 뚫어 엎은 후 앞에 구멍을 내었다. 그리고 나무를 떼었다.


더운 여름에도 항상 불을 피워야 해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나마 좁은 부엌보다 마당이 요리하긴 나았다. 엄마와 아버지가 일하러 가신 후엔 저녁은 늘 나의 몫이었다. 그땐 그렇게 싫던 일이다. 지금은 가끔 그때가 그립다. 소나무 타던 냄새, 참나무가 타닥타닥 타던 냄새가 그립다. 저녁이면 노을을 타고 온 동네에 퍼지던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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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 이젠 추억을 먹고사는 것 같다. 이런 추억이 많으니 나는 한동안은 심심치 않을 것 같다.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 다시 돌려보는 것도 인생 사는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지금처럼 팬데믹 상황에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다. 이렇게라도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 밖에.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는 것 밖에. 그래도 나의 하루는 이전 저런 일로 행복하니,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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