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마주하는 사람과 마음, 그 사이의 작고 큰 이야기들을 기록합니다
오늘도 평소처럼 바쁘게 하루를 시작했다.
카톡엔 고객 문의, 현장 사진촬영, 도면 요청이 줄지어 들어오고, 그 와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 맞다.. 건우개나리 사장님...”
재도배 관련 건으로 다시 연락을 드려야 했다.
조금 부담되는 통화였다.
그동안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뭔가 미묘하게 어긋난 지점이 있었고, 이번엔 고객의 상황이 더 민감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드렸다.
"사장님, 요긴 처음부터 고객이 먼저 타사례의 하자건을 의뢰 했었쟎아요.."
하지만 사장님은 내 말을 중간에 끊고,
본인의 사정, 핑계처럼 들리는 설명들을 빠르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 그거 우린 그런 내용 전달 받은적도 없고..."
"원래 도배지가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우리 입장도 좀 이해해줘야지..."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탁 튀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말을 강경하게 끊어버리고, 단호하게 내 입장을 밀어붙였다.
“사장님, 지금 고객이 어떤 상태인지 아세요?
지금 그 얘길 듣자는 게 아니잖아요.”
그 말투, 그 강도..
한참을 장악했던 통화를 마치고 나니,
옆에 있던 남편이 조심스레 말했다.
“방금, 건우사장님 조금 당황하신 것 같더라.”
그 한 마디가 딱..........
순간 전율처럼 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나 방금, 갑처럼 말한 거야?
그 사장님, 나보다도 연배 많은 어르신인데…
내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
나는 분명히,
이 상황을 정말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었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이겨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황을, 그 대화를, 그리고.. 그 어르신을...
그날 하루 종일
“내가 왜 그랬지?”
“그 순간 튀어나온 그 힘...., 그건 뭐였을까?”
혼잣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걷고 있었다.
그 힘,
어쩌면 그게 바로 ‘내 안의 갑’이었을까?
불편한 상황이 오면, 상대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강한 말, 빠른 판단, 위에서 누르는 듯한 말투..
내가 몰랐던 어떤 존재가 슬쩍 나와 말을 휘두른다.
그리고 무섭게 말이다. 그 순간 나는 그 갑의 힘에 완전히 KO를 당한 기분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건 내가 원하던 말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원하던 내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사장님께 전화를 드려 조심스럽게 사과를 전했다.
“아까는 너무 급하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좀 더 부드럽게, 그분의 말도 귀 기울여 듣고, 고객 상황도 천천히 풀어 말씀드렸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한마디를 내 스스로에게 해주었다.
나는 누군가를 이기고 싶지 않다.
상대를 꺾거나, 관계를 우위로 끌고 가려는 사람이 되는건 더더욱 싫다.
나는 그저,
사람과 사람으로 마주 대하여, 서로의 온도를 느끼고,
조금씩 진짜 ‘사람’이 되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늘은 마감현장을 담기 위해 늘 바쁘게 움직이던 카메라를,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돌려본 날이다.
솔직하게, 그리고 더 정직하게..
내 안의 ‘갑’을 다시는 키우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 안의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람과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나,
오늘, 그 간절했던 하루를 남겨본다.
그래서 오늘은 마감 현장 대신, 내 안의 어두웠던 그림자를 촬영하고 기록해 본다.
갑처럼 먼저 말하지 않고,
을처럼 낮은 마음으로 늘 누구에게나 조심하고,
사람처럼 닿으려는 그 마음을 끝까지 붙들기 위해..
"내가 진짜 지켜야 할 건...
상대 위가 아니라,
그 사람 아래와
곁이니까.."
사진: Unsplash의Joma Barleah이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