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이 느린 남매 육아일지

산타할아버지는 없어요?

by 봄울

지난주, 첫째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와 다투었다.
다툼의 이유는 아주 사소하면서도, 아이에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였다.


“산타할아버지는 없어. 그거 거짓말이야.”


친구의 말에 민수(아들이름, 가명)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산타할아버지는 있어.”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말다툼은 싸움이 되었다.
그날의 이야기는 민수에게서 직접 듣지 못했다.
시어머니를 통해 전해 들었다.

집에 돌아온 민수는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니, 산타할아버지 없어요?”


할머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있지”라고 대답하셨고,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하지만 다음 날, 같은 문제로 다시 친구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리고 민수는 또다시 집에 돌아와 같은 질문을 했다.


“할머니, 산타할아버지 정말 없어요?”


계속되는 다툼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할머니는
이번에는 사실을 말해주셨다.


“사실은 산타할아버지는 없어. 동화 속 이야기야.”


민수는 한참을 생각하다 다시 물었다.


“그러면 크리스마스 선물은 뭐예요?”


“민수가 착한 일 하고, 일 년 동안 잘 지내면
엄마 아빠가 민수의 산타할아버지가 되어주는 거야.”


“그럼 산타할아버지는 왜 모자도 쓰고, 수염도 있고,
옷은 왜 빨간색이에요?”


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둘만의 비밀로 하자고 했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손주들이 없을 때
우리 부부에게 그날의 에피소드를 전해주셨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기 전
나는 조심스럽게 민수에게 물었다.


“민수야, 산타할아버지는 살아계실까?”


민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할머니한테 들었는데
산타할아버지는 없대요. 동화 속에 있는 분이래요.”


“그러면 민수는 크리스마스에 선물 못 받겠네?”


“아니에요. 할머니가 알려주셨는데,

엄마 아빠가 산타할아버지 되어준대요.
비밀이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민수는 선물을 받고 싶어서
할머니와의 비밀 약속을 지키고 있었고,
그래서 친구와 다퉜던 일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산타.png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어린 시절 성탄절을 떠올렸다.
유치원에서 산타 복장을 한 누군가에게
크레파스를 선물로 받았던 기억은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나는 산타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아이의 동심을 지켜줄 만큼 여유롭지 않았고,
기념일을 챙겨 선물을 건네줄 형편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일찍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민수는 2025년,
세상 물정을 유난히 빨리 아는 친구를 통해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아이의 동화를 지켜주고 싶었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사실이었고,
다행히 큰 충격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아
그나마 마음을 놓고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어 했던 장난감은
해외 배송이라 1월 8일에 도착한다는 이유로
아빠가 구매하지 않았다.
대신 성탄절 전에 도착할 수 있는 선물을 골라
창고에 숨겨두었다.


아이에게는
언젠가 알아야 할 비밀이 하나 사라졌고,
그 사실이 조금은 슬펐다.

아이의 마음과 생각이
조금 더 동화 속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지켜주지 못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수는 주말 내내 열이 났고
결국 독감 진단을 받아
학교에 5일간 가지 말라는 진단서를 받았다.


혹시…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아이를 아프게 한 건 아니겠지.


괜히 두 사건이 겹쳐지며
마음은 더 안쓰러워졌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실과
아픈 몸이 동시에 찾아온 시간.


아이는 아마도
3학년이 되기 위한 성장통을
마음과 몸으로 함께 겪고 있는 중일 것이다.


부디 이번 주에는
감기도 얼른 낫고,
엄마 아빠에게 말하지 못한
작은 충격의 상처들도
독감과 함께 깨끗이 씻겨 내려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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