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에게 반납한, 졸업식
지난 금요일은 둘째의 졸업식 날이었다.
나는 반차를 내고 아이의 졸업식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 직전,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둘째가 열이 나서 교실에 누워 있다는 말이었다.
졸업식은 이미 시작되었고, 일단 유치원으로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도착해 보니 졸업식장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문 앞에서 “둘째는 교실에 있어요”라는 말을 듣고 아이를 만나러 갔다.
아이의 얼굴은 축 처져 있었고, 몸은 뜨거웠다.
나는 아이를 안고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시골 병원에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앉을자리를 찾다 보니 구석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아이는 피곤했는지 내 무릎에 누워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진료실에서 독감 검사 스틱이
아이의 입 안으로 들어갔고
10분 뒤, 독감 판정이 나왔다.
첫째도 일주일 전에 독감에 걸렸었는데,
나중에 선생님과 통화하며 알게 된 사실은
둘째 반 아이들 네 명 중 세 명이 독감이었다는 것.
결국, 다들 한 번씩은 걸린 셈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아이는 잠이 들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 방 침대에 눕자 곧바로 잠들었다.
평소 좋아하던 태블릿조차
클릭할 힘이 없는지
그저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약을 먹였지만
아이는 먹은 것을 모두 토해냈다.
다음 날 아침에도 토했고,
열은 사흘 내내 계속됐다.
새벽마다 해열제를 먹이고
체온을 재고
물을 마시게 하고
팔다리를 주물러주며 밤을 보냈다.
둘째는 양쪽 다리 길이가 다르다.
까치발로 걷기도 하고,
발에 사마귀 같은 티눈이 있어서
자주 아파한다.
발등으로 디디는 습관 때문에
굳은살도 배겨 있고
몸 전체가 비교적 뻣뻣한 편이다.
아픈 아이 옆에서
불편한 잠을 자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 마음은 더 안쓰러워졌다.
그랬던 아이가 오늘은 쌩쌩했다.
새벽에는 39도 가까이 열이 올라
해열제를 먹이려 했지만 완강히 거부해서
미지근한 물을 마시게 하고 재웠다.
독감 약은 잘 챙겨 먹었고
오늘은 해열제를 먹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밝게 웃고 씩씩하게 뛰는 모습을 보니
“아, 살아났구나” 싶어서 기특했다.
휴대폰을 클릭하는 손놀림을 보는데
괜히 웃음이 났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휴대폰만 붙잡고 있는 모습이 걱정이었는데,
아프고 나니
휴대폰을 하는 그 모습이
안심이 되는 순간이 되어버렸다.
참 웃긴 일이다.
내 마음이 이렇게 변덕스럽다니.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졸업사진을 한 장 남겨주셨다.
그래도 기념일이니까.
다만 찍기 싫은 사진을 억지로 찍느라
아이 얼굴엔 짜증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미안해.
그래도 이 날은 중요한 날이니까.
초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오늘이 '예비소집일'이었다고 한다.
아이가 아프고 하는 통에 날짜를 확인하지 못했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집에 가서 입학통지서를 찾았다.
집에는 남편이 있었고,
오늘따라 보일러가 터져
둘째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입학통지서를 들고 학교에 가서 서류를 제출하고,
작성해야 할 서류에 사인을 하고,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둘째 아이는 잘 놀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번개불에 콩을 볶듯
아침부터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였다.
금요일에 졸업식을 놓친 날부터
아이가 독감에 걸리고,
입학통지서를 제출하고,
회사 업무를 처리하는 사이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그렇게 일상을 회복했고,
그리고 이 순간을 감사하게 바라본다.
아이가 씩씩하게
엄마의 휴대폰을 찾겠다며
주머니 소지품 검사를 하는 이 순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