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바위, 보
아빠와 오빠는 미용실에 다녀와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 했고,
나는 회식이 있었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 8시 반쯤이었다.
둘째는 할머니 침대에 엎드린 채
휴대폰으로 타요 영상을 보고 있었다.
분명 나와 눈은 마주쳤는데,
몸은 이미 잠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집이 너무 추워 바로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보일러와 히터를 켜고
방이 데워지길 잠시 기다리는 동안,
아이의 눈은 천천히 감겼다.
그 사이 아빠와 오빠가 도착했고,
할머니는
“잠들었으니 그냥 여기서 재워”라고 말씀하셨다.
감기 기운으로 몸이 불편했던 나는
솔직히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서둘러 방으로 돌아왔다.
오빠는 아빠가 사 온 다트로
아빠와 한 판을 했다.
아빠는 아들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고,
오빠는 져서 속상해했다.
아침이 되었다.
시리얼과 우유가 있었지만,
아침부터 토마토 피자 타령을 하는 바람에
오빠는 냉동피자를 먹었고,
둘째는 시리얼에 우유를 말아먹고 있었다.
그런데 둘째는
나를 분명히 봤음에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제 엄마가 나를 두고 갔다’는 마음이
그 표정 안에 고스란히 있었다.
작고 단단한 배신감 같은 것.
오빠는 냉동피자를 혼자 다 먹고,
할머니가 미리 준비해 주신 시리얼로
시선이 옮겨졌다.
아빠는 우유를 더 부었고,
아빠와 오빠는
한 그릇을 사이에 두고 나눠 먹었다.
마지막에 우유가 조금 남았다.
두 사람의 손이 동시에 그릇을 잡았다.
“가위바위보 하자.”
아빠는 가위,
아들은 보자기를 냈다.
첫 판은 아빠가 이겼다.
우유를 마셨다.
그런데 아빠는 일부러 우유를 조금 남겨두었다.
“한 판 더.”
두 판을 연속으로 보자기를 내서 진 아들에게
내가 말했다.
“남자는 주먹이지!”
오빠는 내 말을 듣고 주먹을 냈고,
이번엔 이겼다.
아빠는 가위바위보를
더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들, 다 마셔!”
오빠는 내 말대로
남은 우유를 다 마셨다.
그때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 말은 잘 듣네.”
나는 바로 대답했다.
“아들은 항상 잘 들었거든?”
그러자 아빠가 말했다.
“그렇지. 엄마가 아빠 말을 안 듣는 게 문제지.”
나는 지지 않고 말했다.
“아빠가 엄마 말을 안 듣는 게 문제지.”
아침 식탁 위에
우유와 장난과 말다툼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었다.
한편, 삐져 있던 둘째에게 다가가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제 분명히 엄마를 봤는데,
엄마가 안 데리고 가서 속상했지?
율이가 잠들어서.
다음엔 꼭 데리고 갈게.”
사과와 약속을 건네고 나서야
둘째는 손끝을 마주쳐 주었고,
마음이 풀리는 듯 보였다.
이런 아침을
나는 기억해두고 싶다.
누가 이겼는지 중요하지 않고,
누가 말을 더 잘 듣는지도 중요하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