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다녀왔다’는 말에 담긴 것들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가려고 문을 열었을 때
자동차 위에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다.
작은 빗자루를 들고 앞뒤로 쓸어가며 눈을 치웠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였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교회를 향한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대략 45분 정도 걸린다.
아이들과 이동할 때면 늘 휴대폰 거치대에 영상을 틀어준다.
둘째가 좋아하는 타요나 치로와 친구들,
첫째는 앞자리에 앉아 공룡 노래나 헬로카봇,
요즘엔 메탈카드봇을 자주 본다.
첫째 영상이 끝나면 둘째 영상을 틀어주는 게 우리 집의 순서인데,
어제는 둘째가 보던 영상이 남아 있어서 먼저 틀어주었다.
그러자 첫째가 바로 투정을 부렸다.
“왜 내 거 먼저 안 봐요?”
“동생 거 먼저 보고 틀어줄게.”
대신 점심에 피자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덧붙였다.
“오빠가 양보해줬으니까 엄마가 도넛도 사주면 오빠가 더 좋겠지?
그럼 또 동생한테 양보해줄 수 있겠지?”
그 말을 듣더니 첫째는
말없이 연달아 동생 영상을 두 개나 보게 해주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지난주 교회에서는 월반이 있었다.
첫째는 3·4학년 반으로,
둘째는 유치부에서 유년부로 올라갔다.
새로운 교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
적응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교실이 바뀌면서 동선도 달라졌다.
첫째는 평소보다 한 층을 더 내려가야 했고,
나는 둘째가 있는 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잠시 걱정했는데,
첫째는 스스로 길을 찾아 정확히 내려와 있었다.
첫째에게는
“예배 잘 드리면 스티커 하나 받을 수 있어”라고 말해두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물어보니
아이의 대답은 망설임으로 가득했다.
“선생님께 확인해봐도 될까?”
“그건 좀…”
예배 시작 전에 돌아다녔던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부족했다는 걸.
스티커를 못 받았다는 사실에
아이의 마음은 많이 슬퍼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백밀러로 둘째의 얼굴을 자주 살펴본다.
아이가 좋아하는지, 무표정인지.
둘째는 자기 취향이 아닌 영상이 나오면
금세 얼굴이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날은 오빠 영상이 조금 지루했는지
눈이 서서히 감기더니 잠이 들었다.
약속했던 피자는 결국 사지 못했다.
첫째가 둘째 반에서 받은 떡볶이가 먹고 싶다며
선생님께 부탁을 했고,
원래 떡볶이를 좋아하는 걸 알고 계신 선생님들이
무려 두 컵이나 챙겨주셨다.
아이를 예뻐해주는 어른들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첫째는 떡볶이를 먹고 나더니
“배부르니까 그냥 집에 가요”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교회를 다녀왔다’는 말 속에는
아침에 눈을 치운 일도,
아이들 옷을 입히고 외출 준비를 시킨 일도,
말 못하는 둘째를 위해 미리 화장실을 다녀오게 한 일도,
각자의 예배 장소로 보내고
다시 만나 집으로 돌아오는 일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도 함께 들어 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첫째가 유년부 예배에 적응하는 데는 8개월이 걸렸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나는 유년부 예배를 함께 드렸었다.
그렇게 첫째가 나와 분리된 이후에야
둘째도 교회에 올 수 있었고,
둘째는 2~3개월쯤 걸려 적응했다.
그때 나는 유치부 예배를 드렸다.
‘언젠가는 적응하겠지.’
그 말로 버텼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올해,
아이들은 엄마 없이 각자의 예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용히, 스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