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이 느린 남매 육아일지

잠은 멈춤이 아니라, 조정이다

by 봄울

아이들은 함께 잘 때마다 누운 위치가 달라진다.

어제는 머리가 있던 자리에, 아침이 되면 발이 와 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벽이 아니라는 듯
아들은 몸을 굴려 사람을 넘어간다.
마치 거기엔 막힘이 없다는 것처럼.


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잠이 험하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 속에는 걱정도 있고,
어쩌면 ‘좀 고쳐야 하지 않겠니’ 하는
세대의 기준도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조금 다르게 듣게 된다.




아이들에게 잠은
가만히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다.
낮 동안 쌓인 감각과 감정,
말로 하지 못한 마음들이
몸을 통해 정리되는 시간이다.


특히 이 아이들은
잠들어도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몸은 쉬지만
관계는 계속 움직인다.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고,
자리를 옮겼다가 돌아오고,
사람을 넘어가며
‘여기 사람이 있구나’를 확인한다.

그 모습은
불안해서라기보다
확인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둘째는 자다가 꼭 내 옆으로 온다.
그러면 나는 아이를 안아
이불을 덮어주고,
잠깐 눈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말은 많지 않지만
그 짧은 접촉으로
아이의 몸은 다시 안정을 찾는다.




첫째는 잠자리에 들기 전
인형들을 머리맡에 나란히 세운다.
가방에 달고 다니는 키링 인형의 이름은
토토와 파인,
유니콘 인형은 알록이,
가장 좋아하는 애착이불의 이름은
보들이다.


이름을 불러주고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은
아이에게 잠자리를
‘안전한 세계’로 만드는 의식 같다.


요즘은 신비아파트를 자주 봐서
가끔은 무섭다며 잠을 못 자겠다고 한다.
그럴 때 나는 아이 곁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해준다.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아이의 호흡은 느려지고
눈은 스르르 감긴다.


나는 감정관리와 정서관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분 좋게 잠들고,
기분 좋게 깨어나는 것.
세상이 안전하다고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게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사람을 벽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잠자리에서도 그렇고,
깨어 있을 때도 그렇다.
선생님께 혼났을 때
위축되어 멀어지기보다
다시 다가가
다정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아이.


혼남이 곧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아는 아이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그 아이를 미워할 수가 없다.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신호를
아이 쪽에서 먼저 보내오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 아이들의 잠버릇은
성격이나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하고.


이 아이들에게
사람은
부딪히면 멈춰야 하는 벽이 아니라
건너갈 수 있는 존재다.

넘어가도 괜찮고,
다시 돌아와도 되는 대상이다.

그래서 잠자리에서도
위치가 고정되지 않는다.


자리는 중요하지 않고,
함께 있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잠이 험하다’는 말 대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아이들은
잠 속에서도
관계를 조정하고 있는 중이라고.




흔들리지만 혼자가 아니고,
움직이지만 결국 돌아오며,
사람 곁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둘째가 다시 침대 위에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은 어젯밤
얌전히 잔 게 아니라
온몸으로 하루를 건너왔다.

그리고

나는 잠이 조금도 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벽에 부딪혀 멈추는 삶이 아니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뛰어넘어도 된다고
믿는 마음이 고마울 뿐이다.


아이의 삶이
그랬으면 좋겠다.

장애가 있어도
그걸 뛰어넘고,
앞으로 벽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을
수없이 만나게 되더라도
그때마다
‘나는 넘어갈 수 있어’라고
자기 자신을 믿는 삶이기를.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나를 넘어가는 게
기쁘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줘.
넘어가도 돼.
언제나.

엄마는
너의 벽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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