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의 시간
그 설명들은 정확했지만,
내 머릿속에 남은 시간은
이상하게도 흐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장면처럼,
어떤 순간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우리는 시간을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건을 기억한다.
그날의 공기,
빛의 방향,
말 한마디,
지나치게 조용했던 침묵 같은 것들.
시간은 계속 흘러갔지만
기억은 흐르지 않고
한 장면으로 남았다.
기분이 좋을 때는 시간이 빨리 가고
힘들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말하지만,
돌아보면 그 차이를 만든 것은
시간의 속도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일(사건)이 있었는지였다.
어떤 날은
짧았는데 오래 남고,
어떤 시간은
길었는데 아무 흔적도 없다.
그래서 나는 점점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은 우리를 지나가지만,
우리는 시간 위에 지층처럼 남는다고.
지진이 땅의 시간을 한 번에 드러내듯,
어떤 사건은
우리 안에 쌓여 있던 시간의 결을
갑자기 밖으로 드러낸다.
그전에는 몰랐던 마음의 깊이,
이미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던 감정의 층들.
아픔은 그 모든 것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다만,
이미 있었던 것을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어떤 아픔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된다.
그 순간에는 알 수 없었지만,
거리와 시간이 생긴 뒤에야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말할 수 있게 되는 때가 온다.
이해란
설명이 아니라
간격이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
사건과 나 사이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 일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해의 시간은
빨라질 수 없다.
당겨질 수도 없다.
그건
시간이 흘러야만
자연스럽게 생기는 자리다.
그래서 어떤 아픔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된다.
그 순간에는 알 수 없었던 일들이
거리와 시간이 생긴 뒤에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된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해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상태에 가깝다.
사건과 나 사이에
충분한 시간이 흐르고,
감정과 기억 사이에
숨 쉴 수 있는 간격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 일을
조용히 꺼내 놓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해의 시간은
서두를 수 없다.
그건
시간이 흘러가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자리이고,
어느 날 문득
이미 와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가깝다.
이해는
아픔을 없애지 않는다.
다만,
그 아픔을
삶 안에 둘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