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언제 다 정리해?

스팸메일 2만 통을 비우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by 봄울


“이걸 언제 다 정리해?”


한숨이 먼저 나왔다.
나는 잠시 모른 척을 했다.
어차피 대부분은 스팸메일, 광고메일일 테니까.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불편하고, 고된 작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참을 미뤘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메일을 한두 개씩 삭제하기 시작했다.


막연하게만 보이던 그 일이
어느 순간부터는
내 안에 쌓여 있던 묵은 찌꺼기들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뭐지?
없애는 게… 재미있네?’


시작은 네이버 메일 계정 하나였다.
그리고 계정 둘.
그 다음엔 핫메일에 쌓여 있던 메일들.
휴지통으로 옮기고,
다시 비우는 작업을 반복했다.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다음 메일도 정리했고,
마지막으로 지메일까지
차례대로 손을 댔다.

어림잡아 2만 통이 넘는 메일을 삭제했다.


어떤 메일은 50통씩,
200번 가까이 클릭하며 지웠고,
어떤 메일은 10통씩 묶어서
묵묵히 비워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분명히 가벼워졌다.

이제 정돈된 마음에
새롭고 좋은 에너지가
조금은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도 매일 살피지 않으면
땅에 잡초가 자라나듯
어느새 엉켜버린다.

피해온 일들은
언젠가 반드시 마주해야 한다.
모른 척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쌓여 있던 이메일을 마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어쩌면 내가 두려워해온 많은 일들,
많은 순간들은
미리 걱정해온 것만큼
무서운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미리 두려워하지 말자.
만약 무언가를 상상해야 한다면,
차라리 가장 좋은 장면을 떠올리자.


나는 잘 될 것이고,
반짝반짝
내 방식대로
빛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타이어형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