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떠올리다가,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깊이에 들어가는 방식은
하나만 있는 걸까?”
바다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스노쿨링,
스킨스쿠버,
그리고 잠수함.
같은 바다를 바라보지만,
들어가는 깊이와 방식은 전혀 다르다.
스노쿨링은
수면 가까이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다.
물속을 들여다보긴 하지만
완전히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숨은 여전히 바깥에 있고,
몸은 언제든 위로 올라올 준비가 되어 있다.
마음도 비슷하다.
우리는 가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본다.
“내가 왜 이럴까”
“요즘 좀 힘든 것 같아”
그렇게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거기까지다.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스노쿨링은
나에게 이런 의미로 다가온다.
마음을 살짝 만져보는 단계
안전하고,
부담 없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거리.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정도로는 부족해진다.
겉에서 바라보는 것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필요한 것이
스킨스쿠버다.
스킨스쿠버는
장비를 갖추고
의도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숨을 맡기고,
압력을 감수하면서
그 안으로 들어간다.
마음도 그렇다.
어떤 감정은
피하지 않고
직면해야만 알 수 있다.
어떤 상처는
겉에서 설명하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괜찮은 척이 아니라,
정리된 말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스킨스쿠버는
나에게 이렇게 느껴진다.
마음의 깊이를
직접 경험하는 단계
그곳에는
눈물이 있고,
침묵이 있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방식이 있다.
잠수함이다.
잠수함은
깊이를 없애지 않는다.
압력도 그대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압력 속에서도
사람을 지켜준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지워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그 깊이 속에서도
우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마음의 잠수함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기도,
말씀,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그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깊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 머물 수 있게 된다.
생각해보니
나는 늘
스노쿨링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조금 들여다보고,
조금 느끼고,
다시 올라오는 삶.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부르신다.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준비시킨 후에
초대하시는 방식으로.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어도,
그 안에
나를 지켜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믿으면서.
깊이는 여전히 낯설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