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는 마흔의 비밀

1장 종잡을 수 없는 인생

by 봄울

1-5. 귀국 - 다시 한국으로 도망치다

“따르릉”
이른 아침부터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휴대폰 번호를 보니 여행사 사장님이다. 그는 감기에 걸린 아내를 위해 약을 찾고 있었다. 물론 현지 약국에서 구할 수도 있지만, 효능만큼은 한국 약이 가장 낫다며 한국 감기약이 있는지 찾고 있었다. “네, 저희 집으로 오세요. 가지고 있어요.” 마침 가이드를 하면서 손님들에게 받아둔 한국 감기약이 있었다. “따르릉, 집 앞이다.” 감기약을 챙겨 부르르 내려갔다. “모닝커피 한 잔 할래?” 감기약이 고마웠는지 약값으로 커피를 사겠다고 한다. 10시경에 지인과 약속이 있어서 잠시 망설이다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평소 같으면 괜찮다고 얼른 가시라고 했을 텐데 그날은 사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근처에 맥도널드가 있어서 사장님 차로 이동했다. 함께 알고 지낸 지가 10년이 된 사이, 나에게 가이드를 가르쳐 준 분이기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가이드만 하셔서 집사님이라고 불렀고, 회사를 차리시고 직함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호칭은 변하지 않았다. “요르단에 약이 많아도 한국약이 잘 맞더라.” 감기약을 고마워하면서 말씀하신다. 대화는 최근에 일어난 교회의 문제로 이어졌다. 교인들 대부분이 목회자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황이었다. 사장님은 심성이 곱고, 타인의 장점을 잘 보는 분이었다. 모두가 좋은 방향이 되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성도들이 조금 더 배려해줬으면 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햄버거를 우걱우걱 씹으면서 아메리카노를 주스 마시듯 들이키고, 다른 약속을 위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모님에게 약을 빨리 전해주는 게 좋기도 하니까.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빨간불 신호등이 켜진 터라 횡단보도 맨 앞에 멈춰 섰다. “너 운전할 수 있지?” 갑자기 사장님이 내게 물었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네. 할 수 있어요.” 갓길에 차를 대고 자리를 바꿔 앉았다. “나 병원에 좀 데려다줘.” “아.. 알겠어요.” 빠르게 머리를 굴려서 병원의 위치를 파악했다. 군 병원이 가장 가까울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운전을 하는데 사장님의 머리가 내 운전석 쪽으로 떨어진다. “집사님! 괜찮으세요?” 다급한 질문에 사장님은 중얼중얼 대기만 한다. 뭘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혀가 꼬인 말들이 사장님의 입에서 이어졌다. 병원에 도착하면 통역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아랍어를 제일 잘하는 선교사님께 도움 요청 전화를 걸었다. 10시에 만나기로 했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취소했다. 10분 안에 병원에 도착을 했음에도 다음날 저녁 8시경 사장님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무엇이 그렇게 급하셨을까?

교회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빈소를 마련하여 3일 동안 예배를 함께 드렸다. 생전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 나였기에 사장님이 어떤 분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적어서 낭독했다. 일에 있어서 의견 차이가 있을 때는 치열하게 다투기도 하고, 상대방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을 바꾸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 가이드가 편하면 손님들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다.‘ ‘손님들에게 받지만 말고, 가이드도 베풀 줄 알아야 해.’ ’ 우리는 쇼핑이야기 하지 말자. 요르단은 계속해서 청정지역이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우리가 하는 말에 권위가 생긴다.’ ‘전 세계 가이드와 비교해도 실력이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상향 평준화를 만들어보자.’ 그는 손님이 많이 오지 않는 여름철에는 가이드스쿨을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스터디 모임을 했고, 성지순례코스에 없는 지역들을 1박 2일 코스로 만들어서 스터디투어를 했었다. 돌이켜보면 도망치듯 온 요르단에서 나는 사장님 덕에 일을 대하는 자세와 열정을 배워왔다. 일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보람을 느낀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감각을 갖게 되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 나는 여행객을 만나서 가이드를 하는 중이었다. ‘마션’ 영화 속 촬영지이기도 한 와디럼에 갔다. 베드윈 텐트 숙소에서 1박을 하는 일정이었다. 저녁이 되어 식사 시간이 되었다. 3시간 동안 땅속의 열로 음식을 익혀서 고기와 야채를 주는 별식이 나왔다. 한국팀만이 아니라, 유럽의 여행객들도 저녁식사를 기다렸다. 그런데 현지 종업원들은 유럽사람들에게 먼저 음식을 주고, 한국인을 차별하였다. 가이드로서 화가 난 나는 그들의 무례함에 씩씩거리며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너희들, 두고 봐! 내가 브루스 리에게 다 말할 거야!” 휴대폰의 버튼을 누르다가 꿈속의 나는 알게 되었다. ‘아 맞다. 집사님 없지..’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리고 누가 보든 말든 엉엉 울었다.

너무도 생생한 꿈에서 깨어나자 ‘당분간 가이드 일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가야겠다.’ 한국에 있을 때는 신용불량자가 싫어서 빚으로 도망을 친 선택을 했는데, 요르단에서 사람을 잃고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워서 다시 한국으로 도망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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