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는 마흔의 비밀

1장 종잡을 수 없는 인생

by 봄울

1-3. 요르단 여행사에 취직하다

신용불량자로 시작된 나의 여정은 캐디, 호이스트 운전을 거쳐 서울의 한 중식당에 정착했다. 한 달 백만 원, 그마저도 월세와 기본 생활비를 제하면 남는 건 거의 없었다. 매일 밤 퇴근길에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언제 돈을 모아서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까?"
스무 살의 선택지 중에서 공부만큼은 희망으로 보였다. 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토록 공부가 하고 싶었을까. 아마도 그때의 나는 공부라는 것이, 내 인생을 다시 정상궤도로 돌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요르단 한인 여행사의 제안이 왔다. 4대 보험 압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더구나 크리스천인 나에게 성서 지리를 배우며 일할 수 있다는 건 축복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이곳에서라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무언가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어렵게 마련해 주신 30만 원을 들고 요르단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티켓 920불은 회사에서 가불해 주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을 바라보며 꿈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랑 이틀 만에 찾아온 첫 가이드 업무였다.
"가이드 바로 할 수 있어?"
"할 수 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국경지대에서 만난 첫 관광객들 앞에서 준비한 설명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눈앞은 흐려졌다. 초라한 내 모습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갈 데가 없으니까."
이 한마디가 나를 지탱했다. 매일 밤 악몽을 꾸면서도, 자료를 백번 넘게 읽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컸던 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공포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눈을 감으면 자료의 페이지가 저절로 넘어가는 게 보였다. 놀랍게도 두려움의 장소들이 하나둘 좋아하는 곳으로 바뀌어갔다. 실패를 딛고 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요르단에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어느 겨울 새벽, 안개 자욱한 출근길이었다. 멀리서 택시가 보여 손을 들었다. 앞뒤 좌석에 이미 네 명의 현지인이 타고 있었다. 자리가 없어 보여 가라고 손짓했는데, 앞자리의 남자가 자신의 무릎을 가리키며 웃었다. 음흉한 웃음소리가 안갯속을 파고들었다. 그들의 시선이 칼처럼 날카로웠다. 화가 나서 택시를 등졌지만, 그들은 한동안 내 걸음 속도에 맞춰 천천히 따라왔다. 결국 큰길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이방인의 설움보다 더 큰 것은 여자라는 이유로 느껴야 하는 불안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에도 단련되어 갔다. '여기가 이상한 게 아니야. 어디에나 이상한 사람은 있어.' 아침이면 털고 일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월급 1200달러는 매달 밀렸다. 회사는 한국 여행사의 값 깎기 요구에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월급을 제때 주지 못했다. 그래도 견딜 만했다. 적어도 집세 330달러만큼은 나올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날도 여느 때처럼 사무실과 호텔을 오가며 일했다. 새벽 3시 출근, 한국시간에 맞춘 업무 처리, 다시 호텔로 가서 관광객 응대.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출근을 하지 않은 소장님께 전화로 집세를 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달은 집주인한테 나중에 준다고 해."
순간 귀가 멍해졌다. 그동안 밀린 월급도 참았는데, 이제는 발 딛고 사는 곳마저 위태로워진 것이다. 그날 밤, 낡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바란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도 아니고, 그저 이 작은 방의 집세만이라도 제때 나왔으면 했다. 그 소박한 바람이 이렇게 사치였나.

결국 나는 회사를 나왔다. 월급이 밀리는 건 참았지만, 거주 문제까지 흔들리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내 소박한 바람은 단지 매달 집세가 나오는 것뿐이었다. 그 작은 바람조차 찬바람 맞고 시들었지만, 나는 또다시 일어설 준비를 했다. 이번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스무 살의 나처럼, 서른 살의 나도, 마흔 살의 나도 계속해서 일어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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