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종잡을 수 없는 인생
1-4. 자격미달 가이드
“가이드 몇 년 했어?”
성지순례 손님으로 온 남자, 배가 불룩 튀어나온 50~60대 아저씨였다. 호텔 로비에서 룸키를 받은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 직전에 나에게 물었다. 6년 했다고 답변하자 “얼마 안됐네?” 하는 비아냥 거림이 돌아왔다.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짧다고 우습게 여기는 무례한 태도에 위축이 되고 말았다.
“네 얼마 안됐습니다!”
애써서 쪼그라든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짧게 무미건조한 대답을 내놓았다. “언니는 가이드가 안 어울리는데?” 날아오는 스매싱 공격을 받아치지 못하고, 라켓을 놓친 기분이 들었다. 순진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모습에 만만한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안녕히 주무시라고 웃으면서 인사하고, 그의 질문은 조용히 흘려보냈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나고 투어가 시작이 되었다.
지평선이 보일 듯한 광야가 넓게 펼쳐졌다. 듬성듬성 잎사귀없는 뿌리같은 식물이 보였다. 돌멩이와 모래, 양들이 지나가서 생긴 줄무늬 길. 처음에는 한국과 다른 풍경에 호기심을 품었다가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자 손님들은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 동안 요르단의 역사 이야기부터 현대사에 이르는 설명을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고 한참동안 집중해서 말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소리친다. “개다!” “어디 어디?” 사람들이 눈길을 돌린다. ‘내 멘트가 문제가 있나? 그렇게 재미가 없나?’ 마음속으로 푸념을 하면서 “여기도 개 있습니다!” 하면서 다시 설명을 이어간다. ‘진짜 매너없는 사람이야.’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투덜댔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뭘 먹고 살아요?” 또다시 설명을 방해하는 질문이 툭 튀어나왔다. 가이드로서 알려주고 싶은 요르단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에 말문이 막혔다. 손님들의 관심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뭘 먹고 사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자꾸 내 말 무시하고!‘ 마음속으로 씩씩대는 아이가 토라졌다. ’요르단은 이스라엘 다음으로 성경과 관련된 지역이 많아요. 이 나라는 예수님도 쉬어가신 지역이에요. 중동이지만, 석유가 나지 않아요. 그래서 가진 게 많이 없어요. 그래도 없는 중에 난민들을 국민으로 받아주고 함께 살고 있어요. 이 나라는 꼭 부유해야만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비옥한 초생달 지대에 이곳이 포함되었어요. 그래서 강대국들에게 밟혔던 곳이에요. 열사의 땅으로 알고 계시지만, 여긴 겨울에 눈이 내려요. 중동은 테러리스트 이미지가 강해서 안 좋은 인식이 있지만, 요르단 사람들은 한국처럼 정이 많아요‘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들인데, 손님들은 경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꼭 필요한 설명을 마치고,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그동안 조용히 손님들이 자주하는 그 질문, 뭘 먹고 사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왜 이것이 궁금할까?
한국이라는 나라는 세계에서 최빈국에 속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여행을 와서 질문을 던졌던 분들은 전쟁으로 굶주린 세대였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자신을 쏟아부어 삶을 복구한 세대가 아닌가.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질문을 정면으로 직시하자 답이 보였다. 호텔 로비에서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질문을 했던 손님이 떠올랐다. ’저 사람은 누군가에게 비아냥을 받아본 적이 있지 않을까? 마음속 깊은 상처에 갇혀 스스로 해를 가하고 타인마저 아프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제는 뾰족한 가시에 찔려서 아팠는데, 오늘은 가시가 주사기가 된 것 같았다.
성지순례를 오는 관광객이 선호하는 가이드는 대체로 유형이 정해져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성별은 남자, 타이틀은 목사나 선교사. 그와 정반대로 나는 나이 어린, 성별은 여자, 타이틀은 없었다. 핸디캡이 많아서 마음속 아이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국에선 신용불량자, 요르단에선 가이드 자격 기준미달로 평가된 기분이었다.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한 사람은 출구를 못 찾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이지 않았던 막막함이 답을 찾아갔다. 가이드 3년이 되었을 때, 버스에서 이동하는 내내 한 번도 쉬지 않고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지식이 쌓였다. “이제 그만 쉬어.” 손님들은 잠을 자면서도 가이드가 열심히 떠들고 있으면 고마워했다. 5년이 되었을 때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혼자서만 열심히 떠드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10년이 되었을 때, 자유로움을 알게 되었다.
’이거구나!‘ 이 일은 나에게 시작하고, 반복하며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음을 주었다. 한국에서 배운 적 없는 중동의 역사를 공부하는 게 막막하기만 했는데, 중동사는 유럽의 역사와 맞닿아 있었다. 역사의 흐름이 뚫리고 연결되는 것은 배움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지식의 파편을 연결해서 나만의 진주를 만든 느낌이랄까?
비록 부채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불안정한 중동의 정세로 인해 안정적으로 꾸준하게 일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 쉬셨던 피난처의 땅에서 나의 내면은 단단해지는 기회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은 모난 돌이 둥근 돌로 깎이는 시간이 되었다. 불편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사해처럼 내면의 깊음이 생겼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대로 알려진 사해, 해수면보다 무려 410m 아래인 곳. 여기로 유입되는 요단강(요르단강)의 물은 흙탕물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해는 탁한 강물을 맑게 만든다. 더러워 보이는 흙물을 아래로 보내어 진흙으로 머드팩이 가능하게 하고, 맑은 윗물 주변에는 바닷물보다 염분이 높은 소금 결정이 가득해 풍부한 미네랄을 머금고 있다. 세상이 보내는 탁함에도 내면의 맑음을 잃지 않고, 더러운 것을 분별해내어 누군가를 돕는 유익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 가장 낮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