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종잡을 수 없는 인생
20대 신용불량자
내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풀어본다면, 빼놓을 수 없는 장면 하나가 있다. 잔잔했던 스토리가 극적인 위기로 전환하면서 주인공의 고난이 시작되는 장면. 그 속의 나는 22살이었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부모님은 안 계시니?”
“저 혼자 있어요.”
“잘 안 보이게 뒤에다 붙이고 갈게.”
빨간딱지들이 장롱과 TV 등 가전제품과 가구에 붙여진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고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 상황을 조용히 지켜본다. 집에 귀가한 엄마는 부채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아빠는 어떤 대책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한다.
“아빠가 오면 네가 얘기를 꺼내 봐. 무슨 대책이라도 있는지.” 엄마는 등을 떠밀 듯 나에게 말한다. 아빠는 곧 집에 오셔서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튼다. “부채가 얼마큼 있어요? 어떤 대책이 있어요?”
아빠는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고 말없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이대로 결론 없이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한 엄마는 나에게 다시 한번 시도해 보라고 요청한다. 용기를 내어 안방으로 들어간다. 곤란한 질문을 회피하려고 아빠는 엄마를 밀치고 거실로 나가려 한다. 그 모습에 화가 났다.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빠를 밀었다. 힘으로 성인 남자를 상대할 수 없었지만, 일종의 저항이었다. 마음속으로 ‘이보다 더한 행동도 할 수 있어! 엄마를 지켜야 하니까!’ 하는 외침이 들린다.
생애 최초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아빠로부터는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한다. 아버지는 교도관이었다. 태권도와 유도 유단자였고, 키가 작아도 바디빌딩을 해서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었다. 교도관 직업 특성상 죄수들을 상대하다 보니 말투는 강압적이었고, 명령조의 어투였다. 암묵적으로 ‘아니요’라는 말은 우리 집에서 허용되지 않았다. ‘네’라는 말 이외의 선택권은 없었다. 불편한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차라리 ‘몰라요’라고 말했다. 무서운 아빠 앞에서 어떤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나왔다. 아빠의 눈빛은 차가웠고, 죄수 대하듯 하는 태도에 항상 주눅이 들었다. 빨간딱지가 붙여지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상황이 되어서야 용기를 내어 대화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아빠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남에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친구들, 친척들 빚보증을 섰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자 아빠의 직장으로 압류통지서가 날아왔다. 주변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아빠는 명예퇴직을 선택한다. 연금으로 받을 수도 있었는데, 퇴직금 전액을 일시에 받았다. 사기라는 모래폭풍이 불어서 퇴직금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은행과 세무서 등 독촉전화는 매일 전화벨 소리로 울려댔다. 가족들 모두 시끄러운 전화를 귀가 안 들리는 사람처럼 외면했다.
퇴직한 아빠는 카드깡을 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미성년자 남동생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1년만 더 학교에 다니면 졸업이었는데, 돈이 없어서 제적을 당했다. 한순간에 인생이 끝나는 기분이었다. ‘내 이름으로 된 빚이 얼마인 거예요?’ 아빠에게 묻고 싶었던 건 그거였다. 지금까지도 듣지 못한 대답이다. 어디에,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내 인생은 끝났어’ 상황과 환경이 원망스러웠다. 나를 벼랑 끝에 세운 아빠가 미웠다.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이 푹푹 나오면서도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간절함이 일었다. 그런데 그 간절함이라는 게 장녀로서 가정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는 거창한 책임감은 아니었다. 쓰나미 같은 불행이 삶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나 스스로 삶의 안정 궤도를 지키고 싶었다. 그때의 나에게 삶을 지켜내는 것이란 또래처럼 공부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는 것이었다.
‘일자리를 찾아보자. 학교를 마쳐야 해’ 등록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자리를 검색해 본다. ‘일급이 7만 원이라고?’ 현재 수준에서 빠르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이걸 해야겠다.’ 그런데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