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종잡을 수 없는 인생
1-2. 골프장에서 몸싸움이라니
새벽 2시, 검은 정장을 입은 덩치 큰 남자들이 갑자기 방문을 열어젖혔다.
"전부 나와! 당장!"
이게 무슨 영화 촬영장인가 싶었다. 하지만 22살의 나는 곧 이것이 현실임을 깨달았다. 양쪽으로 깡패들이 도열해 있었고, 그들 앞으로 우리 A측 캐디들과 쫓겨났던 B측 캐디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한밤중에 깨어난 우리의 숨소리가 차가운 공기 속에 하얗게 번졌다. 어둠 속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들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내가 왜 이곳에 서 있는 걸까?'
한 달 전, 나는 이런 상황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빨리 돈을 벌어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등록금을 벌어야 했고, 가족들의 기대도 저버릴 수 없었다. 주변의 친척들과 부모님 친구들은 장녀인 내가 가정 경제를 일으키기를 바랐다. 그들의 기대가 때로는 등을 떠미는 바람 같았고, 때로는 어깨를 누르는 돌덩이 같았다.
"너는 장녀잖아. 동생들 생각도 해야지."
"요즘 취업도 힘들다며? 돈 되는 일이면 뭐라도 해봐."
귓가에 맴돌던 어른들의 말씀이 현실의 무게로 다가왔다. 밤마다 취업 사이트를 뒤지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골프장 캐디 모집 공고였다. 여성 월급이 대부분 100만 원이던 시절, 하루 일당 7만 원이라는 숫자가 나를 유혹했다.
'이거면 6개월만 일해도 등록금은 모을 수 있어.'
'아침 일찍 시작하면 저녁에는 공부할 시간도 있잖아?'
스스로를 설득하며 만든 장밋빛 계산이었다. "숙소도 제공됩니다"라는 한 줄에 안심했던 것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첫날 도착한 숙소는 19명이 한 방에서 칼잠을 자야 하는 닭장 같은 곳이었다. 놀라움에 어안이 벙벙해 화조차 나지 않았다. 좁은 방에 깔린 이불들 사이로 각자의 작은 영역을 만들며,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을 안고 이곳에 모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빠르게, 많이, 벌 수 있는 돈’
새벽 3시 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시작되는 하루는 전쟁이었다. 19명이 두 개의 세면대를 돌아가며 쓰고, 화장을 하고, 골프장까지 한 시간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어둠 속에서 산길을 오르는 동안, ‘친구들은 아직 달콤한 꿈을 꾸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현실이구나."
산길을 오르며 주문처럼 되뇌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험한 길도 감수해야 한다고, 이것도 다 경험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니, 그렇게 느려터지면 어떡해? 당장 가서 공 주워 와!"
첫날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욕설. 18홀을 돌며 네 명의 손님 골프채를 든 채, 각자의 공이 떨어진 거리를 계산해 다음 채를 골라야 했다. 순간 판단력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저 눈치 없는 초보였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다른 길은 없었을까?'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루하루가 쌓일수록 의문은 깊어졌다. 밤마다 피곤에 지친 몸을 이불에 뉘일 때면, 내가 꿈꾸던 미래가 이런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리고 이제, 한밤중에 깨어나 다른 캐디와 몸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 B측 캐디 한 명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눈에도 나와 같은 절박함이 보였다.
"올라가면 안 돼요!"
"나는 일해야 돼!"
서로의 몸을 밀치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을 안고 이곳에 왔다. 빨리 성공하고 싶었던, 남들보다 앞서나가고 싶었던 청춘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누군가의 밥그릇을 뺏기 위해, 또는 지키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거였나?'
등을 떠밀던 바람은 어느새 차가운 현실이 되어 있었고, 어깨를 누르던 돌덩이는 더욱 무거워져 있었다. 이렇게 일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 가득했던 조급함과 달리, 삶은 서둘러서 되는 게 아니었다.
첫날 새벽, 산길을 오르며 보았던 달빛이 떠올랐다. 그때의 달은 천천히, 하지만 끊임없이 밤하늘을 건너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길도 그래야 하는 걸까.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그저 자신만의 속도로 묵묵히 걸어가야 하는 길.
밤하늘의 달처럼,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빛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발견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깡패들이 만들어낸 대치 상황 속에서, 나는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