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는 마흔의 비밀

2장 자각 - 문제는 나한테 있었다.

by 봄울

2-1) 청약해 본 적 없는 여자(집문제)

4살 때부터 우리 가족은 작은 방 2개,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 있는 16평짜리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살았다. 11동 508호. 엘리베이터 없는 5층짜리 아파트에서 맨 꼭대기 층이었다. 가끔 꿈속에서 누군가에게 쫓겨서 빨리 집으로 올라가야 했다. 꼭대기 층이어서 조급한 마음이 들었던 게 불편함이라면 불편함이었을 뿐, 살아가기에는 적당한 곳이었다.


내가 6학년 때 우리 가족은 아파트를 벗어났다. 공무원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에 잠시 1년간 거주했다. 재래식 화장실과 붙어있는 방 2개, 주방과 욕실이 겸용으로 있는 집이었다. 난방은 연탄이었고, 임대아파트보다 더 좁았다. 그래서 갖고 온 짐들을 다 풀어놓을 수 없어 방 옆에 붙어있는 다락방에 두었다.


엄마는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가기 전에 최대한 돈을 절약할 생각이셨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좁은 집에서 부대끼는 상태로 온갖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다. 씻는 장소와 주방에 가려면 슬리퍼를 신어야 했다. 자주 출몰하는 지렁이와 이름 모를 벌레들, 쥐도 있었다. 몸을 씻으려고 슬리퍼를 신고 주방으로 들어가면, 지렁이와 이름 모를 벌레들, 때로 쥐를 마주해야 했다. ‘으악’ 비명소리는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질렀다.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은 등교 준비를 할 때였다. 아침에 학교 가기 위해 씻어야 할 때 벌레가 나오면, 얼어붙은 상태로 시간이 흘러 짜증이 났다.


어느 날 여동생이 배변을 보려고 재래식 화장실에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화장실에 쥐가 빠졌어!” 배가 아파서 울상인 그녀를 보며 낄낄 웃어댔다. “그냥 싸” 똥통에 빠진 쥐는 이리저리 몸을 흔드느라 똥이 튀었고, 그 상태에서 볼 일을 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쥐 구경이라도 갈까 싶었는데, 똥물이 튀는 것은 싫었다. 방에서 한참을 티격태격 대화하다가 엄마는 방법을 제시했다. 요강을 이용하던지, 세수하고 그릇을 씻는 수채 구멍이라도 이용하라고. 깔끔한 동생은 다 거부하고 울상으로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상황이 종료된 것은 집주인아저씨가 볼일을 보려고 화장실에 갔다가 쥐를 발견한 이후였다. 그는 재래식 화장실에 불을 붙여서 쥐를 태웠다. 여동생은 집주인아저씨 덕분에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인상이 찌푸리게 하는 구더기는 재래식 화장실에 주인 같았다. 그 장소에 혼자 가는 것은 무서웠기에 동생도, 나도 항상 같이 다녔다.

‘너 거기 있지?’ ‘언니 어디 가면 안 돼!’

주택이 싫었던 건 쥐와 벌레, 그리고 동선의 불편함 때문이었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20대 초반까지 집이 경매가 되어 비자발적 독립을 하게 되기 전까지 계속 아파트에 살았다. 104동 905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모기들도 있긴 했지만, 주택보다 벌레가 없었다. 방 3개, 거실과 주방, 베란다와 화장실이 2개였다. 학교 갈 때 화장실에서 씻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도 줄어들었고, 2000세대 정도 되는 아파트라서 주차장도 넓었다. 상가건물에는 병원이나 편의를 위한 시설이 가까이에 있었다. 아파트는 익숙했고, 편안한 일상이었다.


10여 년 살던 아파트가 경매가 되어 이사를 가게 된 곳은 2층짜리 주택이었다. 전세 1700만 원 집이었다. 우리 가족은 전세금이 부족했는데, 집주인이 부모님을 잘 아는 터라 500만 원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곳에서 우리 가족은 다시 불편을 맞닥뜨려야 했다. 주방은 몹시 비좁아서 음식을 만들어서 방으로 이동해서 밥을 먹어야 했다. 밥을 먹을 때에는 두 사람 누우면 공간이 꽉 차는 곳이라 이불을 반으로 접어서 한쪽에 밀어놓고 다이소에서 5000원에 파는 접이식 책상을 펴서 밥상으로 사용했다. 여동생과 함께 사용하는 방은 침대에 눕는 공간이 전부였는데, 벽에는 돈벌레 같은 벌레들이 돌아다녔다. 집은 어두웠고, 음침했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온몸이 밧줄로 꽁꽁 묶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 집이었다.


거실은 추워서 앉아있기 어려웠다. 벽으로 들어오는 한기 때문에 안방에는 늘 전기장판을 깔아 두었고, 가족 모두 이불을 무릎 위로 덮고 대화를 했다. 남동생이 사용하는 2층은 겨울에 물이 얼었다. 기름보일러를 틀어야 따뜻한 물이 나왔는데, 그마저도 고장이 나면 부탄가스를 사용해서 물을 큰 냄비에 데우고 찬물을 섞어서 씻어야 했다. ‘또 주택이라니!’ 내게 아파트는 찾아야 하는 고향 같은 장소인지도 모르겠다.


요르단에서 지낸 뒤, 귀국 후에는 보은의 어느 면에 정착했다. 교통편이 불편해서 보은읍에 있는 사람들이 시골이라고 말하는 정도인데, 처음 귀촌을 해서는 그 상황이 낯설었다. ‘보은도 시골인데, 왜 여길 시골이라고 말하는 거지?’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하루에 버스가 4번 다니는 곳이다. 보은읍으로 가는 버스는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 오후 6시. 3시간 간격이다. 보은읍에서 6시 10분 정도에 들어오는 버스가 막차이다. 집에서 껌이라도 하나 사려면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그마저도 가까운 곳은 구멍가게다. 그 이외의 필요한 물건들은 보은읍에 나가야 살 수 있다.


도시의 주택에서는 쥐와 벌레를 참아야 했다면, 시골에서는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뱀이다!’ 처음 보은에 내려갔을 때, 이장님은 마을 어르신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주방에 뱀이 나타났으니 잡아달라는 거였다. 주변에 산이 있다 보니 뱀들이 여기저기서 자주 나타나서 1년에 한두 번은 뱀을 보게 된다. ‘악~!’ 비명을 안 지를 수가 없다. 어느 날은 잠을 자다가 귀에 벌레가 들어갔다. 면봉으로 빼낸다는 것이 벌레를 더 깊이 집어넣은 상태가 되었다. 제법 큰 벌레여서 이 벌레도 움직여서 빠져나가려도 발버둥을 치느라 귀고막 가까이에서 벌레가 움직이는 소리의 진동을 듣게 되었다. 공포스러운 몇 시간을 참아서 청주 이비인후과에 갔다. 의사도 깜짝 놀랄 만큼의 크기에 나방이 귀에 들어가 있었다.


. ‘119를 부르지 그러셨어요?’

이걸로 119 불러도 되는 건가요? 해외에서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불편한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은 요르단에서 10여 년을 살다 보니 막연히 ‘조용한 곳에 살고 싶다. 한국에 가면 시골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놓은 진심은 ‘도시에 원하는 장소에 살기엔 돈이 없어!’였다. 자존심 상해서 말하지 못한 속마음이었다. 시골로 가니까 슬리퍼를 신고 나가서 편의점 커피를 살 수 없어도, 늦은 밤 야식으로 배달 음식을 주문할 수 없어도, 대중교통 버스를 타기 힘들어도 ‘억 단위의 집값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괜찮다 ‘고 스스로 설득하고 위로했다. 마음속 설득이 통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던 건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아이들은 2명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병원을 가야 하는 일이 많았다. 첫째 아이는 발달이 2년 정도 느린 편이고, 자폐 성향과 지능이 낮다는 판정을 받았다. 둘째 아이는 뇌병변 소견이 있고, 만 5세지만 아직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의 발달에 도움이 되는 치료와 교육은 시골보다는 도시에 기회가 많아서 인근 도시의 분양, 청약, 주택구입이 필요한 비용들이 얼마나 드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전세 500만 원으로는 아무것도 시도해 볼 수 없었다.


‘사지육신 멀쩡한데 왜 돈을 모으지 못했어?‘


스스로에 대한 비난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청약통장에 2만 원씩 돈을 넣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 부채를 해결하느라 청약통장에 모아둔 얼마 안 되는 돈을 만기가 되기 전에 해지했다. 2~3번 정도 그런 경험을 하면서 적금 만기는 낯선 외부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외부인은 나를 모른 척 지나가기만 했다.

‘목돈을 모은다는 건 뭘까? 세상에 변수가 이렇게 많은데 다른 사람들은 적금을 어떻게 모으는 걸까?’ 변수는 나한테만 생기는 걸까?


아이들을 책임지기 위해 생각을 하다 보니 현타가 왔다. 집을 사려면 빚 없이 돈을 모두 마련해야 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주택자금대출이 무엇인지, 전세자금 대출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왜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까?’


현재 집을 사기에 충분한 돈이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안 하다 보니 꿈이 없었고, 구체적인 계획도 못했다. 당장에 돈이 없어도 검색을 해서 얼마큼의 돈이 필요한지, 이사를 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어떤 단계와 절차가 있어야 하는지는 알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돈이 없어!’라는 핑계로 내 집 마련 정보를 얻는 일도 하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방법이 보이고,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핑계만 가득한데, 나의 입과 생각엔 핑계만 가득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현실에 안주하는 상태에 머무르고 말았다. 불편한 상황을 개선하거나 미래의 안정을 위해 계획하고 시도하지 않은 채, 그저 오늘 하루를 넘기면 그만이었다. 아이들 교육과 치료에 취약한 환경, 생활의 불편에서 벗어나려면, 나는 변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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