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은 할머니와 잘게요!
두 달 전의 일이다.
퇴근 무렵, 첫째 아이가 주차장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자연스럽게 풍경을 찍고 있던 아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엄마, 오늘 할머니 집에서 잘게요.”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전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둘째가 아직 말을 하지 못하다 보니 잠들기 전 떼를 쓰는 일이 잦아졌고,
그 아이를 달래다 보면 어느새 엄마, 아빠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곤 했다.
첫째는 그런 소리에 예민한 아이였다.
동생의 울음소리도 힘들고,
엄마 아빠의 커지는 목소리도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와 반대로,
할머니 방은 조용하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마음 편히 잠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쾌적함을 선택할 줄 아는 아이구나.’
처음에는 서운했다.
그런데 막상 첫째가 할머니 방으로 간 그날 밤, 둘째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빠가 없으니 엄마 아빠가 자기에게만 집중해 주는 게 좋았던 모양이다.
‘아, 둘째도 서운했었구나…’
퇴근 후 집에 오면 시어머니께서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뒤엔 첫째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고,
빨래를 널고, 양치시키고, 재우는 일까지 하다 보면
둘째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늘 부족했다.
첫째의 ‘할머니 방 나들이’는
내가 미처 몰랐던 둘째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준 계기였다.
다음 날, 아들이 퇴근한 나를 반기며 길가에서 꺾은 꽃을 내민다.
“엄마, 꽃 좋아하잖아요? 선물이에요. 편지도 썼어요.”
“고마워, 아들.”
아들이 건넨 꽃을 들고,
노트에 삐뚤빼뚤하게 적힌 편지를 읽었다.
“엄마에게. 엄마, 저 할머니랑 잘게요.
엄마 생일 축하해요. 사랑해요.
○○○ 일기 끝.”
…엄마 생일 아니거든.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아들은 한동안 할머니 방에서 잠들었다.
어느 날부터는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딩동댕!” 하며
엄마, 아빠, 할머니 중 누구와 잘지를 고르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도 이렇게 물어보게 됐다.
“오늘은 누구랑 잘 거야?”
요즘은 다시 엄마랑 자는 날이 더 많아졌다.
‘이번엔 둘째가 서운해하려나?’
첫째와 둘째, 두 아이의 마음과 욕구를 더 세심하게 살피려고 한다.
두 아이가 모두 행복하게 잠들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