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광야에서 배우다

3화. 낙타에게 배운 느림

by 봄울

사막을 건널 수 있는 동물은 낙타뿐이다.

낙타는 뜨겁고 메마른 땅 위를 묵묵히 걷는다.
그들이 없었다면 고대의 무역로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향신료 상인들이 낙타 행렬을 이끌고 3개월, 길게는 6개월 동안 사막을 건넜다고 한다.


그 여정 중 누군가가 죽으면, 상인들은 그 자리에서 급히 무덤을 파고 시신을 묻었다.
그리고 낙타의 새끼를 함께 묻었다.
그 이유는 낙타가 자신의 새끼가 묻힌 자리를 정확히 찾아내기 때문이었다.
무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낙타의 기억을 따라가면
죽은 이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먹먹했다.


‘자신의 아이가 묻힌 자리를 기억한다는 것’ —
그건 생명에 대한 깊은 사랑이자, 끝나지 않은 여정의 약속처럼 느껴졌다.


낙타는 단단한 가시덤불도 아무렇지 않게 씹어 삼킨다.
사막에서는 부드러운 풀보다 그런 가시가 훨씬 흔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피하는 대신, 고통을 ‘삼켜내는 법’을 배운 동물.
그래서 낙타의 입술은 거칠고 단단하다.

나는 그들의 입술을 보며,
나 또한 인생의 가시를 씹으며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아랍 사람들은 종종 농담처럼 내게 말했다.


“사라, 결혼지참금으로 낙타 몇 마리 줄까?”


그 말에는 그들의 문화와 가치의 기준이 담겨 있었다.
한국에서 소가 재산의 기준이었다면, 중동에서는 낙타가 그랬다.
그만큼 낙타는 생존의 상징이자, 가족의 생명을 이어주는 존재였다.


낙타를 보면 ‘참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한 번 물을 마시면 며칠을 버티고,
하루에도 수십 킬로미터를 묵묵히 걷는다.
급하지 않다.
빨리 가려 하지도 않는다.
단지 ‘살아남을 만큼만’ 걷는다.

주인이 시키는대로 말이다.


그 느림 속에는 생존의 지혜가 있고,
그 여유 속에는 믿음이 있다.

요르단의 사막에서 나는 낙타를 오래 바라보았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도 낙타의 눈은 고요했다.
언제 폭풍이 불어닥칠지 몰라도,
그들은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 느림이야말로 사막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이 나를 낙타처럼 만들고 계셨다는 걸.
빚과 좌절, 생존의 무게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묵묵히 걸어야 했던 시간들.
그건 도망이 아니라 훈련이었고,
패배가 아니라 준비였다.


사막의 가시를 씹던 낙타처럼
나는 상처를 삼키며 단단해졌고,
느림의 걸음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지를
조금씩 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낙타에게서 배운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잠시 멈춰도 길을 잃은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언젠가 목적지에 닿는다는 믿음이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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