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광야의 밤, 하나님은 함께 계셨다
낮 동안의 뜨거운 열기가 모래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해가 지면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그날도 나는 모래 위에 누워 있었다.
칠부 바지를 입은 채, 얇은 옷 하나 걸친 상태였다.
그곳이 ‘노숙지’라는 걸 몰랐다.
함께 간 청년들은 신문지, 침낭, 두꺼운 점퍼를 준비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앉아 있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모래의 냉기가 발끝에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손으로 발목을 감싸 쥐며 온기를 되살려 보려 했지만
모래바람은 끊임없이 체온을 빼앗아갔다.
남자들은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로 했지만
결국 깨어 있던 건 남편뿐이었다.
그는 뱀 한 마리를 봤다며 가시덤불을 모아 불을 피웠다.
불빛 앞에 앉아 두 손을 호호 불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광야를 40년 동안 걸었다고 하지…
그런데 나는 하루 밤도 버티기 어렵구나.”
모닥불 옆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가득했다.
1세기의 대상(隊商)들도 이렇게 하늘을 보며 길을 찾았을까.
낮에는 너무 더워 이동할 수 없었으니
그들은 밤이 되어야 걸을 수 있었다.
달과 별이 그들의 나침반이었다.
아직 나침반이 없던 시절, 하늘이 곧 지도였던 것이다.
대상들의 낙타는 짐을 지고 걸었다.
금보다 귀하던 향신료, 비단, 약재.
로마로 향하는 길 위에서, 생명을 잃은 이가 있으면
그의 시신 곁에 낙타 새끼를 묻었다고 했다.
어미 낙타가 본능적으로 자식의 무덤을 찾아내기에,
언젠가 돌아와 시신을 찾기 위함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신다는 건
그분이 길을 잃지 않으신다는 뜻이구나.
우리가 사라져도, 그분은 우리가 묻힌 자리를 아신다.
광야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곳이었다.
한 걸음을 내딛으면 두 걸음이 뒤로 밀렸다.
모래 위에서의 삶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똑똑함도, 돈도, 기술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너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가 아니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교회를 다녀도 아플 수 있고,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사람에게 상처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계신다.’
그것이 진짜 약속이었다.
모닥불이 점점 잦아들었다.
새벽 바람이 불어올 때,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아마 이스라엘 백성 중 불평하다 죽은 사람 중 하나였을 거야.”
홍해를 건넌 지 3일 만에 물이 없다고 불평했던 그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광야를 직접 걸어보니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3일이나 참았을까?”
하루를 견디며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은 겪어봐야 깨닫는다.
광야는 나에게 믿음을 가르쳐준 학교였다.
고통이 아니라, ‘함께 계신 하나님’을 배우는 자리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막의 밤을 떠올릴 때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불빛 속에서 여전히 내 삶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