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광야에서 배우다

5화. 가장 낮은 곳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봄울

(광야에서 배우다 – 요단강과 느보산 이야기)


요르단에 살면서 가장 신비하게 느꼈던 곳이 있었다.
바로 요단강이었다.

지도 위에서 보면 별것 아닌 강처럼 보이지만,
요단강은 지구에서 가장 낮은 지대에 흐른다.
해수면보다 200미터 낮은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해,
마이너스 400미터의 사해로 흘러드는 강.

즉,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강이다.


그런데 바로 그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다.

그 사실이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왜 하필 ‘그곳’이었을까?

예수님은 태어나신 곳도,
돌아가신 곳도,
그리고 세례를 받으신 자리도
모두 ‘낮은 자리’였다.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유명하게,
조금 더 안정되고 인정받는 곳으로 향하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요르단의 사막에서 가이드를 하며,
때로는 버티는 것이 믿음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내 안엔 ‘다시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요단강의 지형이 나를 가르쳤다.


“예수님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다.”


그분은 늘 사람들이 내려다보는 자리에 계셨고,
그곳에서 사람을 일으키셨다.
그분의 시선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 깨달음 이후로,
나는 ‘낮은 곳’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낮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랑,
작은 친절,
작은 순종이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느보산은 얼마나 올라가야 하나요?"


사람들은 등산을 해야하는 줄 알고 질문을 한다.


"암만이 느보산보다 지대가 높아서 우리 기준으로는 느보산에 내려가는 거랍니다."


평지 수준의 산책길을 걸으면서 이스라엘 땅을 조망한다.

멀리 사해와 요단강이 있는 위치가 보인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한 산이다.


한 번은 모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어서
걸어서 내려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걷는 동안엔 아무런 묵상이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길은 거칠었고,
모래가 눈에 들어왔고,
무릎이 아팠다.
숨이 차오르고, 땀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걷는 동안은 묵상이 안 된다.”


그건 단지 생존이었다.

묵상은 멈추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움직임이 멎고, 바람 소리만 들릴 때,
그제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종종 바쁘게 움직이며 믿음의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느보산의 길에서 나는 배웠다.
너무 바쁘면, 살아내느라 돌아볼 여력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멈춤의 시간을 통해
나를 보게 하셨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지,
그리고 그 연약함 속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지켜지고 있었는지.




요단강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고,
느보산은 그 끝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게 한다.
낮아질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건 세상의 성공이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선을 닮고 싶다.

높이 오르지 않아도,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요르단에서 내가 배운 믿음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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