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사람과의 관계에서

6화. 들리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by 봄울

페트라에서 돌아오는 길은 늘 조용했다.
붉은 협곡을 걸어 나온 사람들의 얼굴엔 모래와 햇살, 그리고 고요한 피로가 묻어 있었다.
하루에 만 보를 넘게 걷는 여정이니 버스에 오르자마자 모두 깊은 잠에 빠졌다.
운전석 뒤쪽 앞자리에 앉은 나는 잠시 멘트를 멈추고 사람들에게 쉼을 주었다.
그때였다.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청각장애가 있는 두 분의 목사님이셨다.
옆 자리에는 수화통역이 가능한 사모님이 타고 계셨다.
놀랍게도, 그분들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같은 패키지팀에, 같은 버스에 태워 보내신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를 느꼈다.

수화를 통해 전달된 목사님의 말은 이랬다.


“저 사람들 자는 동안, 나에게 1시간만 들리는 귀를 빌려주신다면
나는 정말 열심히 잘 들을 수 있을 텐데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목사님은 잠들 수 없었다.
가이드의 “이제 도착했습니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깊이 잠드는 순간은 곧 두려움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이동 시간이었지만,
그분에게는 끝없이 깨어 있는 광야였다.


그 말을 들은 이후,
나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 가이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말 한마디, 안내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듣는 유일한 통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후로도 손님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전해드렸다.
그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조용히 녹였다.


얼마 후 다른 팀을 인도하던 중,

이번에는 시각장애가 있는 사모님을 만났다.
그분은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시내산도 오르셨고, 페트라의 시크길도 걸으셨다.
사람들은 놀라워했지만, 그분의 걸음에는 두려움보다 평안이 있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걱정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누군가에게 피해가 된다면
저를 보내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그분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손으로 시크길의 벽을 더듬으며
그 공기와 바람, 돌의 온도를 감각으로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분의 걸음 하나하나에는 감사와 경외가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다르게 들리고, 다르게 보이게 하시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신다고.

그때의 여정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청각장애 목사님과 시각장애 사모님 —
서로 다른 여정을 걸었지만,
그분들은 모두 하나님을 ‘감각으로 믿는 사람’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발달장애가 있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아이들을 통해 내가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의 폭이
억지로, 그러나 아름답게 넓어졌다는 것.

그분들의 세상은
소리로만, 눈으로만, 혹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세상은 마음의 촉감으로 존재하는 세계였다.
그리고 나는 그때, 요르단의 버스 안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어떻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시는지를 배웠다.


들리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감사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통해
그분의 완전함을 배우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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