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웃음은 김치냄새를 타고
나는 매일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다.
사무실 근처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었고,
배달을 해주는 곳이라곤 버거킹이나 맥도널드뿐이었다.
요르단은 주소체계가 정확하지 않아서
‘○○길 몇 번지’ 대신
“쉐라톤 호텔 뒤쪽 건물이에요”
이런 식으로 설명해야 했다.
전화로 길을 안내하다 보면
배달기사가 엉뚱한 곳에 도착하기 일쑤였다.
결국, 현지여행사 파트너에게 부탁해서
그가 잘 먹는 음식 - 햄버거가
내 점심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자
거울 속의 나는 점점 둥글어졌다.
입 안에는 늘 기름 냄새가 남았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갔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이러다 정말 햄버거 인간이 되겠구나.’
그날 밤, 나는 결심했다.
“내일은 김치볶음을 해 가야지.”
한국에서 날아온 작은 보물 같았다.
기름 두르고, 마늘 넣고, 김치를 볶는 그 순간 —
지글지글 소리만으로도 이미 행복했다.
김치 냄새가 사무실에 퍼지자
나는 그리움과 위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현지 여행사 손님들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들 얼굴에 일제히 번진 ‘이건 뭐지?’ 하는 표정.
나는 민망해서 서둘러 창문을 열었지만
이미 공기 속엔 한국의 냄새가 가득했다.
민망한 상황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너무 맛있는 걸 어떻게.’
그날 나는 오랜만에 마음껏 웃었다.
이방의 땅에서도 김치 냄새는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 시절 또 하나 잊지 못할 일은
월세를 내러 집주인 댁을 찾아갔을 때였다.
문을 열자 향긋한 아랍커피 냄새가 가득했다.
작은 잔에 담긴 검은빛 커피는
진하고, 향기롭고, 또 무척 뜨거웠다.
나는 예의상 한 모금 마시고, 남김없이 잔을 비웠다.
그랬더니 집주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 사라! 기다려요. 다시 줄게요!”
그리고는 내 잔을 또 가득 채워 주었다.
나는 또 다 마셨다.
그랬더니 다시,
“좋아요, 하나 더!”
그제야 눈치가 이상했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였다.
“아랍에서는 커피를 절반쯤 남겨야 ‘잘 마셨다’는 뜻이에요.”
그날 나는 배가 커피로 가득 찬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커피 잔을 내려놓을 때마다 웃음이 났다.
‘다음엔 꼭 절반만 마셔야지.’
하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 집주인 아저씨는
‘왜 저 한국 여자는 끝까지 마시나’ 궁금했을지도 모른다고.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그런 순간들이 내 삶의 가장 따뜻한 웃음이었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달랐지만
우리는 냄새와 커피 잔 하나로
서로를 기억하게 되었다.
김치냄새 속에서 피어난 웃음,
커피잔 속에 담긴 오해와 친근함.
그 모든 것이 나에겐
사람과 관계의 또 다른 언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