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사랑이 만든 순례
한국인 아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공항 게이트를 걸어 나왔다.
나이든 부부의 모습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 순례의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미국에서 살았는데, 내가 아파서 남편이 한국에 온 거야. 이 양반은 한국음식을 못 먹어.”
아내되시는 분이 내게 설명해주었다.
그는 한국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한국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아내가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였다.
그는 늘 미소를 지었고,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 순례팀은 가톨릭팀이었다.
요르단의 세례터, 느보산, 마다바 —
그 어느 곳에서도 그는 늘 아내 곁에 있었다.
걸음이 느린 그녀를 위해 발걸음을 멈추고,
햇빛이 강하면 모자를 씌워주고,
길이 험하면 팔을 내밀어 잡아주었다.
나는 현지가이드로서
요르단의 역사와 성지를 열정적으로 설명했지만
영어가 짧은 탓에 그에게는
온전히 다 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 눈으로 말했다.
‘나는 당신의 사랑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내 눈빛을 읽었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 미소 안에는
말보다 깊은 무언가가 있었다.
순례가 끝나갈 무렵,
그는 나에게 천천히 영어로 말했다.
“Thank you… for your kindness.”
그리고 아내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She wanted this trip… so I wanted it too.”
그 한마디가 마음속 깊이 남았다.
사랑은 이해나 언어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는 것,
그는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요르단의 바람은 따뜻했고,
그들의 뒷모습은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요했다.
나는 그날, 믿음이란 단지 종교의 형태가 아니라
사랑을 끝까지 붙드는 마음이라는 걸 배웠다.
그가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느보산 정상에 섰을 때,
그곳은 더 이상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라
사랑이 완성되는 하나의 예배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낯선 땅에서도 끝까지 함께 걷던 그 손,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순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