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아라바 국경에서의 작별
북쪽, 갈릴리와 가까운 쉐이크 후세인 국경,
사해 인근의 킹후세인(알렌비) 국경,
그리고 남쪽, 붉은 바다와 맞닿은 아라바 국경.
그날은 이집트를 거쳐 요르단으로 들어오는 순례팀을 맞이하기 위해
암만에서 출발해 아라바 국경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보통 두세 개 팀이 같은 날 입국하면
같은 회사 소속의 가이드들이 한 버스를 타고 함께 이동한다.
국경이 가까워질 무렵,
조용히 울린 전화벨 소리와 함께 아하마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내게 조용히 말했다.
“사라,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나는 오늘 일을 못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아하마드는 현지가이드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파트너였다.
그날은 하필이면 내 생일이기도 했다.
아하마드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국경의 붉은 먼지를 바라보았다.
암만에서는 이미 대타 현지가이드가 내려오고 있었고,
그 사이 남아 있던 두 명의 현지가이드가
우리 팀과 다른 팀의 국경 행정 업무를 나누어 맡았다.
순간의 혼란 속에서도
우리는 예정된 2박 3일의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뒤,
한국인 가이드들은 아하마드의 고향 쌀트(Salt) 로 향했다.
이슬람 관습상, 여자인 내가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그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함께 갔다.
나는 차 안에서 조용히 기다리며
그의 아버지와,
그가 겪고 있을 갑작스러운 슬픔을 생각했다.
잠시 후,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
아하마드였다.
“사라, 안으로 들어오라고 할 수 없어서 미안해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나는 너희 나라의 법을 알고 있어요.”
그 짧은 대화 속에는
말보다 깊은 이해가 있었다.
아하마드는 내 마음을 읽었고,
나는 그의 나라 관습을 존중했다.
그날 나는 다시 배웠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언어나 행동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도,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아하마드의 슬픔과 나의 마음이
국경처럼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를 사이에 두고도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은혜는 종교의 언어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머문다는 것.
비록 우리의 믿음은 달랐지만,
그날 하나님은 분명히 그곳에 함께 계셨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아하마드의 아버지를 마음으로 기념한다.
아하마드도 알고 있었다.
그날이 내 생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도 여전히 그날의 하늘과 바람,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