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레바논 공항이 닫히던 날
요르단에서 시작해 시리아와 레바논까지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와디럼의 붉은 모래 위를 달리며 짚투어를 하고, 페트라의 장대한 협곡을 지나, 사해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마스커스의 구시가지, 팔미라의 유적, 크락데 슈발리에의 성을 지나며 팀은 국경을 넘어 레바논으로 향했다.
인솔자로 온 여성은 차가운 첫인상과 달리, 일처리가 매우 꼼꼼하고 능숙했다.
영어도 유창했고, 현지가이드에게 직접 지시하며 설명을 이어가곤 했다.
그때의 나는 아직 레바논·시리아 지역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숙했다.
그래서 그녀의 주도적인 태도에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내어 온 이들에게 필요한 설명을 해주는 일이라면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문제는 마지막 날, 베이루트에서 발생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 시위대가 타이어를 태우며 길을 막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연기가 자욱한 하늘 아래, 우리 버스는 공항을 향해 나아갈 수 없었다.
현지가이드와 운전기사는 여러 차례 우회로를 찾아보았지만 길은 막혀 있었다.
‘공항이 닫혔다’는 말이 내 입 안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그 말을 손님들에게 바로 전할 수는 없었다.
겁먹은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조금 지연될 것 같습니다”라며, 침착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결국 우리는 베이루트 인근 호텔에서 급히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인솔자는 특유의 냉철함으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정리했다.
요르단 현지 여행사와 통화를 이어가며 항공편을 확인하고, 대체 노선을 알아보았다.
그날 호텔 전화비만 70~80달러가 나왔다.
천재지변이나 국가재난의 경우, 여행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솔자는 자신의 카드로 1박 추가 숙박비를 결제했다.
그녀의 침착함 덕분에 모두가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비행 전까지 남은 시간, 전날 가지 못했던 비블로스를 들렀다.
고대 페니키아의 도시, 언덕 아래 지중해가 펼쳐진 그곳에서
사람들은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으며 안도한 듯 웃었다.
하지만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비블로스는 대형버스 주차가 어려운 곳이라, 버스는 다른 지역에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버스가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다.
초조해진 손님 한 분이 “이러다 비행기 놓치는 거 아니냐”며 내게 화를 냈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알고 보니, 버스의 연료탱크에 구멍이 나서 수리 중이었다.
결국 대체 차량이 오긴 했지만, 그 시간 동안의 긴장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왜 문제는 한꺼번에 오는 걸까.'
그날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공항이 폐쇄되고, 도로가 막히고, 버스가 고장 나는 일들이 연이어 터졌지만
손님들은 결국 무사히 레바논을 떠날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한 분이 내게 다가와 “그땐 미안했어요”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렸다.
그들이 떠난 뒤, 나는 암만으로 돌아가기 위해 11시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비행기가 또 연착되어 한 시간 넘게 공항에서 머물렀다.
텅 빈 대합실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손님들도 이렇게 불안했겠구나.’
그제야 그들의 초조함이 마음 깊이 이해되었다.
그 팀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암만성 투어가 국가휴일로 미뤄져 혼란스러웠던 일,
시리아의 하미디예 시장에서 아이처럼 기뻐하던 얼굴들,
그리고 베이루트 공항이 닫히던 그날의 긴장된 공기까지.
그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가이드로서의 성장통’이었고,
동시에 ‘사람을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지금도 그 팀의 어르신들이 건강하시길,
그날의 하늘 아래서 빌었던 마음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