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이집트 사태와 수녀님들의 출애굽
그 시기, 내가 맡기로 되어 있던 수녀님 팀은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이집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그 땅은 이미 혼란 속에 있었다.
국경은 폐쇄되었고, 아무 곳도 갈 수 없었다.
그들은 호텔에 갇힌 채 며칠을 보내다가, 결국 공항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들은 정말로 ‘출애굽’을 해야 했다.
원래의 스케줄대로라면 카이로에서 박물관을 보고, 시내산을 거쳐서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지대인 '아라바국경'을 넘어오셔야 했지만, 현지의 변수로 일정은 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집트를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항공편은 레바논행이었다. 급하게 발권된 표의 값은 평소의 두 배였다.
하지만 그들이 속한 바오로의 딸 수녀회는 25년 만에, 평생 단 한 번 주어지는 ‘성지순례의 선물’이라 여행경비를 수녀님 한 분당 15만 원만 받았다고 했다.
가족들에게 조금씩 도움을 받은 분도 있었지만, 정말로 그 돈만 들고 오신 분들도 있었다.
공동경비로 모은 현지 가이드 팁과 국경세를 모두 털어, 그들은 간신히 이집트를 탈출할 수 있었다.
공항은 대혼란이었다.
현지인, 외국인, 한국인까지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음식은 하나도 없었고, 수녀님들은 10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버텨야 했다.
결국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레바논 베이루트의 호텔에 도착해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그들은 다시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향했다.
나는 요르단에서 새벽 6시 반 국경택시를 타고 시리아로 이동했다.
그들이 묵을 호텔의 상태를 점검하고, 국경 근처로 마중을 나갔다.
그날따라 모든 일이 꼬였다.
레바논 버스는 30인승이었고, 시리아 버스는 50인승이었는데, 차량 교체 도중 버스가 후진하다 타이어에 구멍이 났다.
결국 수녀님들은 레바논 버스로 먼저 호텔에 도착했고,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점심을 드실 수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얼굴엔 평안이 있었다.
며칠을 굶고, 탈출하듯 도망쳐온 사람들이라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 저분들은 정말 사도 바울의 딸이구나.'
그날 저녁, 다마스쿠스의 곧은길을 걸으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나니야 기념교회를 함께 방문하고, 사도 바울의 회심을 묵상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시간의 벽을 넘어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에 서 있는 듯했다.
그날 밤, 한 수녀님이 물으셨다.
“가이드님, 우리 페트라는 가죠?”
그 질문에 마음이 먹먹했다.
이집트 일정이 무너지고, 레바논과 시리아 일정으로 대체되면서 요르단의 대표 코스인 페트라를 갈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분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몰랐다.
그들은 이미 페트라의 역사와 사진을 공부해 오셨고, 마음속으로 그곳에 가는 여정을 그려오셨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수녀님… 이번에는 어렵습니다.”
말을 전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순례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은 다른 길을 준비하고 계셨던 게 아닐까.
바오로의 딸들이 바울의 회심의 땅을 밟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음날,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에서 떨어졌다는 카우캅 지역을 방문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군초소에 사전 보고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관리자는 방문을 거부하며 화를 냈고, 나는 수녀님들을 생각하며 간절히 부탁드렸다.
잠시 후, 그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분들이 끝내 이 길을 밟게 해주셔서.'
요르단 국경으로 넘어가는 날, 수속이 지연되어 점심은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먹을 수 있었다.
피곤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그날, 한 수녀님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어머니께서 중국을 가고 싶어 하셨는데,
여권을 만들고 준비를 하시던 중에 돌아가셨어요.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의 계획은 다른 것 같아요.
아마 천국에서는 다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국경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나는 웃으며 말씀드렸다.
“수녀님, 천국에서 다시 만나면 그때 제가 페트라 가이드 해드릴게요.”
그날 이후, 그 팀은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다.
힘들고 불완전했던 여정이었지만, 믿음으로 묵상하고 웃을 줄 알았던 사람들.
이집트를 떠나 시리아를 거쳐 요르단으로 향했던 그들의 여정은, 믿음이 만든 또 하나의 ‘출애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