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예수님의 쉼, 요르단의 강가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끊임없는 괴롭힘을 받으셨을 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분은 피난이 아니라 쉼을 택하셨다.
그곳이 바로 베다니, 지금의 요르단 땅이다.
아랍어로는 마끄다스(Maqdas), ‘거룩한 장소’라는 뜻을 가진다.
베다니 지역은 군사지역이라, 관광객이 들어가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허가만 받아도 최소 1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많은 성지순례 일정에서는 생략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가이드로서 여러 번 그곳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지금의 요단강은 생각보다 얕고, 흐름도 느리다.
하지만 4세기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지도를 보면,
그 시절의 요단강은 거센 물살로 가득했고,
사람들이 강둑에 말뚝을 박고 밧줄을 매어 건넜다고 기록되어 있다.
배가 떠다니고, 노 젓는 소리가 울려 퍼지던 강이었다.
그 강물이 지금은 거의 말랐다.
이스라엘이 갈릴리 호수의 물을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막고,
요르단도 얍복강 중류에 댐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요단강은 성경 속 요단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물살이 잦아든 그 강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단강이 마른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진다는 신호가 아닐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은
‘죄의 종이었던 인간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여정’이다.
광야의 40년은 ‘세상 대신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일은
‘죽음을 넘어 천국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배웠다.
요단강이 줄어들고, 세상의 물줄기가 마른다는 것은
우리의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하나님은 만물 속에 그분의 뜻을 숨겨두셨다.
나는 오늘도 그 요단강을 바라보며 묻는다.
“하나님, 저는 이 마지막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요르단은 참 신비한 땅이다.
예수님이 쉬셨던 땅,
광야를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이 마지막으로 숨 고르던 땅,
그리고 지금도 전쟁과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이 숨을 고르는 땅.
나 또한 그곳에서 쉼을 얻었다.
요르단은 내게 피난의 장소이자, 하나님께 돌아가는 회복의 장소였다.
출애굽 시절, 하나님은 도피성을 주셨다.
부지불식중에 죄를 지은 자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마련된 곳.
그 도피성 세 곳이 지금의 요르단 땅에 있다.
어쩌면 요르단에는 지금도 ‘쉼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요단강을 기억한다.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머무르셨던 이유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쉼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