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쉼과 묵상

18화. 베다니를 침묵으로 걸을 때

by 봄울

요르단과 이스라엘 국경 사이,

그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면

‘베다니’라는 이름의 유적지가 나온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장소, 그분의 발자취가 머문 곳이다.

그날도 나는 성지순례팀을 모시고 베다니를 방문한 뒤, 국경 근처까지 안내했다.
손님들이 이스라엘로 건너가면, 그들이 타고 온 버스는 빈 차로 다시 돌아온다.
버스가 돌아오면 현지가이드(하심)과 나는 그 버스로 암만까지 올 수 있기에

우리는 그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쉬고 있었다.

그때, 하심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라, 너는 베다니에서 말없이 걸어본 적이 있니?”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난 가이드야. 손님들에게 이 지역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잖아.”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라, 베다니는 영적인 장소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걸어봐.
그 장소가 네게 말을 걸 거야.
너는 너무 많은 말을 해서, 들을 수 없는 거야.”


그는 무슬림이었다.
무슬림인 그가 내게 ‘영적인 장소’라며 침묵을 권하는 것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나는 그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며칠 후, 새로운 순례팀을 모시고 다시 베다니를 찾았다.
그날 나는 손님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조금 다르게 해볼게요.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제가 설명을 시작하는 첫 지점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어보아요.
그 장소가 여러분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리고 나도 그들과 함께 침묵 속을 걸었다.


해발 마이너스 300m.

햇살은 부드럽게 땅을 비추었지만, 공기는 숨 막히게 뜨거웠다.

무엇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의 고요함, 평안, 그리고 안식만은 지금도 선명하다.


‘잘 왔다. 내가 너를 쉬게 할게.’


그때 내 마음 깊은 곳에 들려온 목소리.
아마도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에서 세례를 받으셨던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다짐했다.
다시 베다니를 찾게 된다면, 그곳에서는 설명하지 않는 시간을 갖겠다고.

장소가 손님들에게 말을 걸 수 있도록
나는 침묵으로 걷고, 마음으로 듣겠다고.


예수님은 어쩌면 그 장소에서만큼은

내가 ‘가이드’가 아닌 ‘순례자’로 서 있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른다.

그분께, 가이드의 권한을 내어드린 사람으로 말이다.

이전 17화4부. 쉼과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