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팔미라, 붉은빛이 천천히 내려앉는 도시
데이라에주르에서 잠자리조차 구하지 못한 우리는
곧바로 팔미라로 향하기로 했다.
몸은 피곤했고,
눈은 조금 무거웠고,
말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팔미라로 들어가는 길은
피로를 억지로 밀어내는 힘이 아니라,
조용히 마음을 풀어주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사막의 공기는
열을 품고 있지만
그 열은 이 도시의 시간과 함께
부드럽게 식어가는 온기였다.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아주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도착했구나.'
숙소는
호텔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였다.
오래된 가구, 천천히 도는 선풍기,
한 번에 여러 명이 머물 수 있는 큰 방.
그 공간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여행자를 받아들이는 온도가 있었다.
그저 누워 있어도 되는 자리.
몸이 천천히 바닥에 내려가는 자리.
말이 없어도 함께 있을 수 있는 자리.
그 자리가
그날 우리에게는 충분했다.
해가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유적지로 향했다.
팔미라는
도시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빛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건물의 돌은
햇빛에 닿으면
하얗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붉게, 노을처럼, 살결처럼 빛났다.
여행자는
팔미라를 사진보다 몸으로 기억한다.
발바닥 · 공기 · 빛
그리고
걷는 속도.
유적지 한가운데에는
긴 열주로(Colonnade)가 있었다.
기둥들은
한 줄로 정렬되어 있었지만
각각의 돌에는
다른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길을
말없이 걸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길.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되는 길.
그저 나를 걸어가게 하는 길.
바람은 건조했고
사막의 먼지는
빛에 반사되어
공기 속에서 천천히 일렁이고 있었다.
제노비아.
팔미라의 여왕.
이 도시를 지배했던 사람이
남자의 이름이 아니라
여자의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졌었다.
제노비아는
에메랄드빛의 카리스마를 가진 통치자였다고 한다.
로마의 질서가 흔들리던 시대,
그녀는 이 도시를 중심으로
독립된 왕국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녀의 힘은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
도시는 다시 로마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제노비아의 이름은 남았다.
역사는
승리보다
남아 있는 결로 기억되는 법이다.
그 결은
돌기둥의 그림자에서
여전히 조용히 살아 있었다.
노을은
팔미라에서 가장 아름답게 내려앉는다.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도시는 잠시
불타는 듯한 붉은색이 된다.
돌, 모래, 공기, 사람의 피부까지
모두 같은 색이 된다.
그 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충분하다.
나는 그 빛 속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마음도 과장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날 밤,
게스트하우스의 지붕에서
나는 오래 누워 있었다.
새로운 계획도 없었고,
다음 목적지를 서두르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팔미라의 여름밤을
조용히 들여 마셨다.
몸도, 마음도
다시 가벼워진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