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사해, 흙탕물을 품은 바다
사람을 가라앉히지 않고,
오히려 가볍게 떠올려 위로에 띄워놓는 바다.
누구나 처음 사해에 몸을 맡기면 놀란다.
‘내가 힘을 빼도 물이 나를 살려주는구나.’
이것은 이해가 아니라 경험의 세계였다.
사해는 요단강에서 물을 받는다.
그 물은 맑은 물이 아니다.
갈릴리 호수를 지나며
진흙과 모래와 풀잎과 떠다니던 조각들을
모두 끌고 내려오는 흙탕물이다.
사해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선별하지 않는다.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저 받는다.
받고, 받아들이고,
오랜 시간 햇빛 아래 그대로 품고 머금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해는 흙탕물 속에서
소금과 미네랄을 남긴다.
그것은 사람의 피부를 치유하고,
상처를 회복시키는 재료가 된다.
그 장면을 보며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받아들여야만 치유가 시작되는 것들이 있다.
나도 그렇다.
나는 내 안의 흙탕물을 늘 감추려 했다.
흐려 보일까 봐, 약해 보일까 봐, 부족해 보일까 봐.
그래서 괜찮은 척, 아무 일도 없는 척
물 위에 반짝이는 모습만 보여주며 살아온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해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흙탕물을 품는 것이 나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야.”
사해의 북쪽에는 머드가 많다.
사람들은 그 머드를 온몸에 바르고
햇빛 아래 가만히 누워 있다.
피부 속 노폐물이 빠지고,
몸의 열이 내려가고,
굳어 있던 근육이 부드러워진다.
나는 어느 날, 온몸에 사해 머드를 바르고
그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다.
하늘은 아무 일도 모르는 얼굴로 맑았다.
바람은 조용했고,
물결은 미세하게 숨 쉬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 오래된 감정들이
바닥으로부터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참았던 울음,
말하지 않았던 상처,
‘괜찮아’라는 말 아래 숨겨 두었던 아픔.
나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울었다.
누가 보지 않아도 괜찮은 울음.
누구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울음.
사해는 내 감정을 끌어올리고
다시 흘려보내게 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치유는 감추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사해가 흙탕물을 품어 소금이 되듯,
사람도 상처를 품어
더 깊어진 영혼이 될 수 있다.
받는다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약함이 아니다.
흐름을 허락하는 일이다.
나는 그날,
사해의 물 위에서
힘을 빼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쉼이란
억지로 버티는 힘이 아니라,
조용히 몸을 맡길 줄 아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사해는 말없이 가르쳤다.
“괜찮아.
네가 힘을 빼도,
너는 가라앉지 않아.”